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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트 산업 육성 서둘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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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면서 방송 등 시청각 서비스 분야의 경우 일정 부분 미국의 한국 시장 진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케이블TV와 기간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 간접투자가 100% 허용돼 미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이 콘텐트와 네트워크 시장에 동시에 진격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케이블TV와 온라인 VOD에선 미국과 일본 드라마들이 젊은 시청층과 일부 주부를 대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콘텐트 산업 육성은 소홀히 한 채 신규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시장 키우기에만 골몰한 결과다.

FTA 타결로 우리 안방에서 미국 프로그램을 실컷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결코 축복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방송이 금방이라도 거덜날 것처럼 떨고만 있을 재앙도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 안방에 양질의 콘텐트를 공급하느냐에 있다.

대표적인 방송 통신 융합형 서비스의 하나인 IPTV가 곧 등장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수백 개 채널을 고화질로 전송할 수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양방향 서비스를 할 수 있는 IPTV를 멀티미디어 방송으로 할 것인지, 광대역 융합 서비스로 할 것인지만 결정되면 올 하반기 중에 서비스를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문제는 콘텐트다. 케이블TV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또다시 네트워크를 통한 전송 방식에만 관심을 둔다면 IPTV 시장도 저급하고 선정적인 외국 프로그램에 내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대응책은 첫째로 우리 콘텐트 만들기, 둘째로 우리 콘텐트 늘리기, 셋째로 우리 콘텐트 가꿔 나가기에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콘텐트가 가진 문화적 파급 효과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계량화하고, 콘텐트산업을 국가 기간 동력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래서 창의적인 콘텐트를 개발하기 위한 제작 인프라를 구축하고 디지털 시대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또 콘텐트 유통시장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온라인 환경에 맞는 저작권 보호체계를 구비해 콘텐트 제작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IT를 토대로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했다면 앞으로 10년은 전통과 창의력을 앞세운 콘텐트 산업 기반 구축에 나라의 힘을 모아야 한다. 제2의 '겨울연가', 제3의 '대장금'이 계속 만들어져 아메리칸류와 일본류가 전혀 두렵지 않은 우리의 한류를 만들어야 한다. 네트워크 중심에서 콘텐트 중심으로 사고와 발상을 전환하는 것만이 한.미 FTA 시대의 디지털 뉴 미디어 환경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길이다.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