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만화 영화 원화가 김경자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만화 출판물이 대량 보급되고, 만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만화가 지망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더구나 TV만화 영화의 인기가 날로 치솟으면서 만화 영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는 미대 출신 고학력자들도 선망하는 직업이 될 만큼 인기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애니메이터 김경자씨 (38)는 만화가를 꿈꾸는 많은 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 이 분야에 몸 담은지 13년이 되는 베테랑이다.
『무엇보다도 일이 재미있고 즐겁다는게 이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매년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항상 애들 같으니까요.』 우주 공간을 나는 미래의 초능력 슈퍼보이가 됐다가, 금방 조선시대 백발 도사가 되는 등 어린이들처럼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작업을 하다보면 언제나 어린이들과 같이 맑고 밝게 살 수 있다는게 이 직업의 큰 매력이란다.
만화 영화는 작품 기획·스토리 구성·대본 짜기·등장 인물 설정·원화 그리기·동화 그리기·선화·배경 구성·촬영·편집·녹음 등 10단계 이상의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이 전체의 과정 중 김씨가 맡고 있는 일은 원화를 그리는 일.
보통 만화 영화는 초당 12∼24장의 그림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원화가는 장면 장면 중 중요 그림만 그리는 일을 한다. 예컨대 주인공이 물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장면을 그린다고 하면 원화가는 이를 표현하는 수십장의 그림 중 인물의 표정·움직임·분위기 등을 살린 몇 장의 그림을 그린다. 사이사이의 그림은 동화가 들이 이 그림을 본떠 나머지를 채우게 된다.
『물론 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장면도 보다 재미있게 그리려면 창조성과 연출력, 기발한 아이디어 등의 능력이 요구되지요.』
원화가가 그린 그림이 만화의 재미를 좌우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재치·상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발상 등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당연하다. 때문에 여성으로서 원화를 그리는 이는 국내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
김씨가 몸담고 있는 세영 동화의 원화가 50여명 중 여성은 유일하게 김씨 혼자다. 김씨가 원화가가 된지는 약 1년 전부터로 그동안은 동화가로서 실력을 닦아왔다.
만화 1편의 그림은 4명의 원화가들이 나눠 작업하는데 김씨의 작업량은 두달에 1편 정도. 그동안 그린 작품은 「왈도오」「까를로의 모험」 「떠돌이 까치」, 지난 설날 MBC-TV에서 방송된 「은박지 소년」등 1백 편이 넘는다.
국내 만화 시장이 매우 열악한 탓에 김씨가 만드는 만화 영화는 주로 미국 등 외국의 하청을 받아 제작 수출된 뒤 국내 시장에서는 싼 필름으로 역수입돼 방송된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워 여성에게는 안성맞춤입니다. 그러나 집안일 중간 중간에 부업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닙니다.』김씨는 대개 오전 11시쯤 출근해 오후 7∼8시까지 일하는데 일이 많을 땐 집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는 대원·세영·선우 등 4∼5개의 만화 영화 제작사외에 원화가들만으로 구성된 프러덕션들이 50∼60개 정도 있는데 애니메이터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들 제작사에 입사, 동화가부터 경력을 쌓아야한다.
김씨의 수입은 월 평균 1백50만원선. 만화 영화 제작은 성·비수기가 있어 수입이 일정치 않은게 단점이다.
김씨는 무엇보다 1남 1녀의 자녀들이 엄마가 그린 만화를 자랑스러워하는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문경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