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람있는 한글 교육|조미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남편이 출장 간 틈을 타 청국장을 끓이고 있는데 점심을 함께 먹자는 친구네의 초대가 있었다. 미자의 아들 바이런이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그녀의 부엌 벽에 붙은 태극기 그림은 여전하다.
바이런은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의 귀여운 다섯 살 박이 아들이다. 엄마의 뿌리를 강조하는 교육 영향으로 바이런은 한 글학교에 다닌다. 나는 지난해 7월부터 만 네살·다섯살짜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곳 한글 학교의 자원 봉사 선생님이 되었다.
반수 정도의 어린이가 각급 회사 주재원 자녀들, 나머지 반수는 이민 오거나 유학 온 사람들의 자녀다. 바이런처럼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난 존이 나의 반에서 한글을 배우게 되었다. 한 교실에서 2중 언어를 해야하는 고충도 있었지만 수업 시간 90분 중 절반은 그리기·만들기·전래 동화 들려주기이고 나머지는 한글 배우기로 시간을 짰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제법 좋다. 그러나 바이런과 존을 가르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감수해야만했다. 한글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와 똑같이 쓰기·읽기를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어느날 존이 『뜻 모르는 글자를 쓴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얘기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바이런보다 한살이 많은 존은 의젓했고 글씨를 아주 잘 쓰는 아이였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아이를 달래주고 이해를 시키면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선생님의 진심을 깨달았는지 아이들은 이내 아무 일 없는 듯 함께 따라 쓰기를 연습했다.
바이런은 나의 성을 「초」라고 발음한다. 바이런이 초를 배우던 그날 미국인 아빠에게 「초이스 캔들」하며 「미세스 초」와 똑같은 사운드라고 설명하자 이를 들은 바이런 아빠가 한글 학교를 계속 다니라고 격려했다는 친구의 얘기에 나는 기뻤다.
한글 학교 교실은 이곳 한국 장로교 건물을 빌려쓰는 등 사정이 어렵지만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면 만날 수 있는 장난꾸러기들과의 생활은 내게 큰 기쁨이다. <1218 Willow Brook Dr#6 Huntsville. AL35802 U.S.A>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