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대기업 창업주에 후한 평가… 5,000년 아우르는 리더십 존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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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좌로부터 박승직(두산 창업주)·이건희(삼성 회장)·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

월간중앙 대한민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어떤 역사인물에 더 의미를 두는 것일까? CEO 30명에게 <월간중앙>이 선정한 10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주영·이건희 회장이 공동 3위에 올랐다. 역시 기업인은 기업인을 좋아하는 것일까?


CEO들의 선택은 남달랐다. 다른 설문에서는 이름이 보이지 않던 인물 여러 명이 Top 10에 등장했다. 개척정신의 상징인 광개토대왕은 글로벌 경쟁에 나선 CEO들에게도 역시 가장 존경스런 인물 1위였다.

모든 CEO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10명 중 한 사람으로 광개토대왕을 선택했다. “세종이 군사적 능력까지 갖춘 격”이라는 고구려연구재단 김현숙 연구원의 평처럼 광개토대왕은 거의 무결점의 리더였다. 기록상으로도 그는 “체격이 뛰어나게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고 표현돼 있을 만큼 개인적 능력도 뛰어난 데다 철저하게 준비된 지도자였다.

광개토대왕은 리더십 외에도 CEO들이 본받을 만한 경영전략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는 총 7회의 정복활동 중 5차례를 직접 군대의 선두에 서서 전쟁을 지휘함으로써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를 쌓아 나갔다.

광개토대왕은 특히 장거리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는 정복지 주변을 순시하며 대규모 ‘개선 퍼레이드’를 벌임으로써 해당 지역의 귀족이나 토호세력의 저항 의지를 꺾어놓기도 했다.

요즘으로 친다면 고도의 홍보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중국과 대등한 천하의 중심이라며 ‘태왕’ ‘호태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처음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 연구원은 “무리하게 중원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듯, 합리적이고 실속도 챙길 줄 알았던 인물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없는, 거의 완벽한 군주”라고 광개토대왕을 평가했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과 불굴의 도전정신도 CEO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CEO들은 광개토대왕에 이어 이순신을 존경하는 인물 2위에 올려놓았다. 흔들림 없는 충성심과 탁월한 용병술 등을 지닌 그는 경제·경영학자들도 <이순신 리더십> 등의 제목으로 여러 차례 서적을 출판할 만큼 경제전쟁을 치르는 CEO들에게도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지용희 교수는 ‘이순신 장군으로 본 CEO’라는 논문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국을 대표하는 리더의 표상’이라며 그가 지닌 리더십의 원천으로 신뢰성과 공정성, 도전정신과 위기관리 능력, 창의성 및 혁신 추진 의지, 핵심역량 등을 꼽기도 했다.

특히 명량해전에 앞서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렸다는 상소문 중 일부인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았나이다. 죽을 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라는 문구는 많은 CEO들이 인생의 좌표처럼 여기는 말이기도 하다.

정주영·이건희 회장 동률 3위 랭크

다른 조사에서는 없었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이 3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CEO들에게 이들 두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3명의 CEO가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재계 인사들은 정 전 명예회장의 사업 스타일을 “바둑으로 치면 처음부터 싸움바둑이다. 이기면 불계승, 지면 쪽박”이라고 해석한다. 정 전 명예회장은 한 번 믿은 부하는 끝까지 믿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1966년 이 전 시장은 태국 공사현장에서 경리를 담당하는 말단 사원에 불과했다. 당시 태국 인부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현장 직원들이 모두 달아났지만 이 시장은 끝까지 현장에 남아 금고를 지켰다. 당시 목숨을 걸고 금고를 사수한 이 전 시장은 1974년 35세의 나이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다.

이 같은 정 전 명예회장의 용병술은 그가 평소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과 사람의 능력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믿었다.

정주영 회장은 말년에 사업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옆도 뒤도 안 보고 그저 죽자고 일을 했더니 쌀가게 주인이 되었다. 또 정신없이 일만 했더니 건설회사도 만들게 되더라. 그렇게 평생을 살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생존한 인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 10인에 올랐다. 설문에 참가한 CEO들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인 ‘자율경영’과 ‘창조경영’에 동감을 표했다.

이 회장은 평소 삼성의 미래가 걸린 거시적 문제는 직접 챙기지만 실무는 이학수·윤종용 부회장 등 경영진에 위임한다. 또 매년 수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과학기술잡지를 숙독하며 첨단 기기를 분해하는 등 스스로 상상력을 키우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은 평소 열 마디를 듣고서야 한 마디를 언급할 정도로 ‘경청’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다. 부인 홍라희 여사가 비서팀에 전화를 걸어 “내일 회장님 출장은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가 공동 10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박용성·박경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할아버지인 박 창업주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작은 면직물 상점에서 재계 1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두산그룹의 출발점이었던 인물이다.

1906년에 그는 지금의 전경련 성격을 지닌 한성상업회의소 설립에 참여했는데, 이 회의소는 훗날 대한상공회의소의 효시가 됐다.

정일환_월간중앙 기자(wh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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