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축제와 초컬릿(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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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밸런타인데이(2월14일)라는 국적불명의 축제가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꽤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이다.
이날을 앞두고 시중의 백화점·제과점·편의점 등에는 값비싼 수입 초컬릿이 날개돋친듯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고객은 주로 직장에 다니는 젊은 여성들이지만 중·고·대학생에 국민학교 어린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수입축제도 문제지만 한상자에 1만∼2만원씩이나 하는 수입초컬릿이 더욱 인기가 있다는 얘기는 어딘가 개운찮은 느낌을 준다.
서양에서는 여러 세기를 통해 이 풍습이 전해졌다고 하나 그 쪽도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를 잘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서기 3세기께 로마에서 순교한 한 성자를 기리는 날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교회사가들은 역사상 밸런타인이란 이름을 가진 성자가 몇명 있었는가를 조사했다. 8명이 넘었다. 그 가운데 2명은 서기 269년 2월14일 같은날 순교한 것을 발견했다.
그중 한분은 평소 가난한 사람들,병자들,아이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그가 손바닥을 펴면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 발렌틴 사제가 늙어 마음대로 기동을 할수 없게되자 그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겐 따뜻한 위로의 편지를,어린이들에겐 조그만 과자봉지와 함께 재미있는 얘기를 담은 카드를 보냈다.
이 성자 발렌틴이 순교한 날을 기리는게 오늘날의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설도 있다. 기독교를 탄압했던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가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기독교를 전파한 발렌티누스라는 사제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때 아스테리우스라는 간수가 발렌티누스 사제를 흠모,자신의 눈먼 딸 줄리아로 하여금 그에게 학문을 배우게 했다.
발렌티누스사제가 순교한 다음 줄리아는 깊은 신앙에 힘입어 눈을 뜨게 되었다. 줄리아는 발렌티누스 성자의 순교일을 잊지 않고 기도를 드렸다. 이것이 바로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이라는 얘기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풍습은 그렇다치고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좋은 축제일이 있다. 굳이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다면 1년에 한번 칠석날(음력 7월7일) 오작교를 건너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연은 얼마나 흐뭇한 축제의 소재인가.<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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