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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비밀경찰 총수/구동독정권 역사적 단죄 본격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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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2인자 「밀케」 61년전 경찰 모살혐의
통일독일 사법부의 구동독정권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본격화하고 있다.
베를린 지방법원이 지난달 20일 「베를린장벽 사살사건」에서 지난 89년 베를린장벽을 넘어 서쪽으로 탈출하려던 동베를린시민을 사살한 구동독 수비대요원 2명에게 검찰의 구형량보다 많은 형량을 선고한데 이어,드레스덴지법은 지난 7일 89년 5월의 지방선거조작혐의로 기소된 볼프강 베르크호퍼 전 드레스덴시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및 3만6천마르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당시 구동독공산당 드레스덴 지구위원장이었던 한스 모트로 전 동독 총리에 대한 재판도 곧 시작될 것이라고 작센주 검찰이 9일 밝혔다.
또 베를린지법 형사부는 구동독 슈타지(비밀경찰) 총수였던 에리히 밀케(84)에 대한 재판을 10일 시작했다.
밀케는 지난 57∼89년 슈타지총수를 지낸 인물로 구동독의 제2인자였다.
이번 재판이 밀케가 구동독 권력핵심부에 군림하면서 저질러온 그의 진짜 죄과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60여년전 그가 저지른 살인죄를 다루고 있어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계기로 구동독 수뇌부에 대한 본격적인 사법처리가 예상돼 귀추가 주목된다.
밀케에 대한 10일 첫 공판은 피고인석에 방탄유리를 설치하는등 삼엄한 경비하에 진행했다.
이번 공판에서 재판부가 판결하게될 밀케에 대한 기소내용은 1931년 8월9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경찰과 공산주의자들의 충돌시 당시 23세의 젊은 공산당원이었던 밀케가 경찰관 2명을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다.
발생후 60년이 지난 사건인만큼 공판 첫날부터 이 재판은 시효논쟁에 휩싸였다.
이날 변론에 나선 3명의 변호인중 후베르트 드라일림 변호사는 밀케의 살인행위가 음모나 동기가 있어서 한 행위가 아니라 경찰과 충돌시 흥분된 상태에서 살의없이 저지른 행위기 때문에 이미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재판중지를 요구했다. 독일형법상 최장시효는 30년이지만 모살이나 유대인학살같은 인종적 살인은 시효가 없다.
또다른 변호인인 베첸슈타인 올렌슐레거는 밀케를 살인범으로 단정한 1934년 공산주의자 15명의 자백은 나치비밀경찰 게슈타포의 고문과 강압에 의한 것으로 현행법상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없고,당시 사건현장에서 나치돌격대(SA)요원이 경찰관을 사살한 것을 목격한 증인을 확보했다며 밀케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건직후 소련으로 도망친 밀케가 이 사건의 범인임은 분명한 사실이며 당시 정황증거로 보아 모살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날 재판정주변에는 밀케의 추종자들이 모여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이 사건에서 설령 그의 무죄가 선고된다하더라도 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그의 여죄부분에 대해선 유죄가 확실한 것으로 전망된다.
구동독정권과 관련한 최근 일련의 재판들은 결국 구동독의 죄악들이 과거 나치의 그것처럼 역사적으로 철저히 청산돼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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