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북아 FTA' 주도권 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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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중국.인도와 잇단 협상 일정

한국은 다음달부터 유럽연합(EU)과 FTA 협상에 들어간다. 중국.인도 등 거대 경제권과의 초대형 FTA 추진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현재 한국이 미국에 이어 FTA 협상을 하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인도.멕시코 등 3개국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4일 "한.미 FTA에 이어 한.중 FTA가 최종 종착역"이라며 "한.EU FTA가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05년 7월부터 캐나다와 이미 10차례 협상을 했다. 이달 23~27일 11차 협상에서 타결 선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권인 미국과 캐나다는 관심사가 비슷해 한.미 FTA를 바탕으로 쉽게 합의를 도출할 전망이다. 2006년 2월 협상 개시 이후 지금까지 여섯 차례 협상을 벌인 인도와는 FTA라는 용어 대신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 타결이 목표다.

일본과는 2003년부터 여섯 차례 협상을 했지만 농산물 시장 개방을 꺼리는 일본 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최근 일 관방장관이 한.일 FTA 협상을 재개하자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EU와의 FTA 협상에도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권 부총리는 "한.미 FTA로 선진 제도와 환경이 국내에 도입되기 때문에 EU가 특별히 한국에 더 요구할 것은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과는 이르면 내년 FTA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워낙 강하게 요구하고도 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현재 올 연말을 시한으로 산.관.학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중 FTA는 농업 분야의 타격이 한.미 FTA보다 훨씬 클 것으로 분석돼 신중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에 이어 EU.중국 등 3대 거대경제권과 모두 FTA를 맺으면 FTA 체결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전체의 60%를 넘는다.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세계 통상무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병기 기자

경제.안보 '두 마리 토끼' 잡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따라 중국이 그동안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해온 '글로벌 FTA 네트워크'구축 작업이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고 있지 않은 중국은 대신 '경제 동맹'으로 불리는 FTA를 대대적으로 체결해 동맹 수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FTA를 통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해 자국 안보를 강화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미 칠레(2005년 11월).파키스탄(2006년 11월)과 FTA를 체결했다. 특별행정구인 홍콩.마카오와는 2004년 1월 내부 FTA 격인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가동했다.

올 1월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필리핀에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정상들과 '서비스 무역 협정'에 서명했다. 2010년 FTA 체결을 앞두고 주요 서비스 업종을 먼저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2005년 7월엔 '상품 무역 협정'을 먼저 체결해 7000여 개 품목이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중국은 9개의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연관된 국가만 27개국에 이른다. 싱가포르.유럽연합(EU).뉴질랜드.호주.아프리카.걸프협력회의(GCC) 등 사실상 전 세계가 중국의 FTA 대상이다.

특히 2005년 4월 협상을 시작한 호주와는 올해 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시드니 방문을 계기로 FTA를 체결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외교적으로 갈등관계인 인도와도 2015년까지 FTA를 체결하기로 했으며, 현재 그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중국은 한.미 FTA를 계기로 한.중 FTA에 더욱 속도를 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공산품에선 유리하지만 농산물 개방의 충격이 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FTA 협상 전략은 금융.지적재산권 등 중국이 취약한 서비스업 분야의 개방 속도는 최대한 늦추되 농산물 수출은 대폭 늘리는 것이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GDP 1%' 농업 보호 위해 신중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3일 저녁 도쿄에서 태국과의 경제연계협정(EPA)에 서명했다. EPA는 관세 철폐와 함께 투자 및 인력 이동의 규제 완화까지 포함하는 협정으로 자유무역협정(FTA)보다 폭넓은 개념이다.

이번 협정은 일본이 맺은 여섯 번째 EPA다. 일본은 2002년 11월에 발효한 싱가포르와의 EPA를 시작으로 멕시코(발효 중).말레이시아(발효 중).필리핀.칠레와 협정을 맺었다. 이와 별도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전체와의 협정도 대체적인 합의에 이른 상태다. 호주와는 이달 하순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며 인도.베트남.걸프협력회의 등과는 협상 또는 공동연구 중이다.

겉으로는 일본의 FTA 또는 EPA 외교가 활발해 보이지만 내막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실제로 일본은 농민 보호와 식량 안보 등을 내세워 개방을 통한 외국과의 전략적 제휴에 신중한 입장이다. 정계에서 입김이 센 농수산족 의원(지역구의 농수산업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의원)들의 영향력 등 정치적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교역 규모가 큰 미국.중국과는 협상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고, 한국과도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FTA를 통한 동아시아 비즈니스 허브 경쟁에서 일본이 취약한 점이 여기에 있다. 한국과는 2003년 12월 FTA 협상을 시작했으나 일본이 농산물 시장 개방 비율을 56%로 설정하는 등의 이유로 2004년 11월 6차 협상을 끝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일본이 미국과의 FTA에 소극적인 이유도 농산물 때문이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산업상은 "농산물 협상이 중요한데 호주와의 교섭에서 먼저 경험과 노하우를 쌓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과의 조기 교섭에 난색을 보였다. 농업이 일본의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한국 4%), 취업인구 비율도 4.5%(한국 8%)에 그친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이사장을 지낸 하타케야마 노보루 국제경제교류재단 회장은 "일본 경제가 지금 순탄한 상황이기 때문에 FTA로 이를 타개하려는 것과 같은 위기의식이 적다"고 말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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