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 핵무기 어떻게 폐기되나/탄두 제거한 뒤 핵물질 분해(포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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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영구 매립하거나 원자로에서 소각/시설모자라고 돈없이 시간걸릴듯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러시아가 앞으로 핵무기 생산을 중단함은 물론 구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핵무기의 80% 까지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핵공포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있다.
냉전종식으로 사용처를 잃게 된 구소련 핵무기들이 이란·이라크·리비아 등 미덥잖은 국가들에 밀매되고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핵과학자들 역시 먹고살기 위한 핵기술 품팔이에 나설지 모른다는 우려가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방 각국은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계획이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구소련 핵무기를 물려받은 러시아등 독립국가연합(CIS) 4개국에 대한 재정적·기술적·지원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럽공동체(EC)는 1차로 러시아에 핵무기폐기장 설비자금 5억 ECU(6억4천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이를 위해 국제기금을 조성하자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의 제안이 큰 호응을 얻고있다.
미국은 연차적으로 구소련 핵두뇌 2천여명을 아예 미국으로 데려가 핵무기 폐기기술을 전수함과 아울러 이들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과학기술청도 같은목적으로 활발한 구소련 핵전문가 유치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작 러시아 등은 핵무기 폐기비용이 최소 6백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하면서도 돈이 바닥나 폐기다짐만 되풀이 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핵감축선언 하루만인 지난달 30일 『서방측이 파탄지경의 러시아 경제를 구제해주지 못한다면 새로운 군비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등 구소련 핵유출에 대한 서방측의 우려를 역이용,경제원조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는 만들기 보다도 없애기가 훨씬 어렵다고 지적되고 있어 구체적인 폐기방법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핵무기 폐기는 돌발사고에 대비,초강력 콘크리트 등으로 특별히 건조된 폐기장에서 재래식 무기에 장착된 핵탄두를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핵탄두가 제거된 미사일은 폭파하거나 안정장소로 발사,처분한다.
핵탄두는 다시 핵과 탄두로 분해되는데 탄두는 파괴하고 핵은 삼중수계·농축우라늄·플루토늄등 구성물질별로 나눠 밀폐한뒤 지하에 영구매립 하거나 원자로에서 완전연소 한다. 대기권으로 발사하는 공중저장 방식과 원자력발전·합성다이아몬드 제조 등에 전용하는 방안도 있으나 사고로 인한 환경오염 위험과 전용과정에서 유출돼 핵무기 제조에 재사용될 가능성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특히 우라늄의 반감기는 7억년,플루토늄의 경우는 2만4천년이나 돼 핵물질의 영구폐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 러시아는 핵무기 폐기선언을 이행할만한 시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러시아는 1만5천여기의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지만 현재의 폐기시설로는 연간 1천5백∼2천기 밖에 처리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등 서방측 핵보유국들이 50년대부터 핵무기를 수시로 분해,신식핵무기를 만들어온데 반해 러시아는 구식핵무기들을 방치한채 신모델을 개발해 왔기 때문에 폐기경험도 부족하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고유의 핵기술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꺼려 외부의 기술지원을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프랑수아 에이스부르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장등 일부 전문가들은 핵물질 유출 등에 대한 방지책이 마련되지 않는한 핵무기 자체를 안전장소에 보존하는 것이 폐기보다 안전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핵없는 평화보다는 핵안쓰는 평화」라도 확실히 구축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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