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비겁한 농해수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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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위원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가위 점입가경이다. 자신들 소관의 법률에 대해 "처리를 못하겠다"며 두손 두발을 다 들어버린 형국이다. 정말 웃지 못할 촌극이다.

이양희 농해수위 위원장은 8일 아예 박관용 의장을 만나 "우리는 더는 처리할 수 없으니 의장이 직권으로라도 상정해 본회의에서 해결해 달라"고 했다. 대신 매를 맞아 달라는 얘기였다. 매만 피하려 한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다. 생색은 있는 대로 내려고 한다.

농해수위에는 지금 FTA 시행시 농어촌의 충격 완화와 피해 보상을 위한 농어촌 삶의질 향상, 농가 부채탕감, FTA 이행 지원 관련 법안들이 상정돼 있다.

FTA 비준 이전에 농어촌 지원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정부에서 마련한 법안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농촌이 지역구인 농해수위 위원들은 한달여가 넘도록 "지원책이 미흡하다"며 법안 심의를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비준안은 1, 2년 뒤에 하더라도 농촌지원 관련법부터 먼저 처리하자"는 몰염치한 제안까지 내놓고 있다.

순전히 총선 때문이다. 표 깎아먹는 일은 미루고 표 얻는 것부터 하자는 속셈이다. 칠레 정부와 FTA를 정식 서명한 지 벌써 10개월이 됐다. FTA 지연으로 대외 신용도도 추락하고 있다. FTA를 통과시켜라 말라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 국가의 국회의원들이라면 그렇게 비겁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어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기겠는가.

강갑생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