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금성 중앙연 김용주박사(앞서 뛰는 사람들: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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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4세대 항생제 신물질 개발/1만번 넘는 실험서 건진 “월척”/영에 기술수출… 독성·임상 검사/상품화 기술한계로 아직은 샘플만 제조
신혼초 공부한다고 한달에 기껏해야 한두번 빨랫감만 잔뜩 들고 집에 들어오던 남편,직장을 잡은 뒤에도 『실험이 될듯 말듯해 귀가할 수 없다』는 전화를 툭하면 걸어오는 남편.
지난해 제4세대 항생제의 양산이 가능한 신물질을 개발,87년 물질특허실시후 처음 선진국인 영국에 기술수출을 한 럭키중앙연구소의 김용주 박사(36)는 바로 이렇게 「일에 미친 사람」이다.
스스로 「노동자」를 자처하는 김박사는 요듬도 전과 다름없이 허름한 곤색 점퍼차림으로 실험실에서 또다른 신물질을 찾기 위해 플라스크와 씨름하고 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화학물질들을 섞으며 실험결과에 따라 울고 웃는다.
『의약품 합성분야는 특히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비슷한 일의 반복이기 때문에 좌절감에 빠지거나 외로움을 느끼기 쉽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소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때도 적지 않지요.』
제4세대 항생제를 만들 수 있는 신물질은 수백만쪽에 달하는 선진국 참고문헌을 동료들과 밤낮으로 연구한 뒤 1만번도 넘는 합성과정을 거쳐 건져낸 그야말로 「월척」이었다.
이 때문에 세계2대 제약회사인 영국 그락소사가 물질특허분야의 까다로운 관행을 깨고 곧바로 우리나라 기업과 특허계약을 맺었다.
이 분야에서는 6개월간 조건부계약을 체결,기술수준이 믿을만한지,그리고 거액을 들여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꼼꼼히 따진 다음 정식으로 계약을 하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러나 김박사팀이 합성해낸 신물질은 그락소사 연구진들의 초기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따내 번거로운 절차없이 수월하게 기술수출대상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계약과 함께 1천5백만달러(약 1백10억원)를 받았으며 앞으로 3∼4년간 독성시험·임상실험을 거쳐 상품화될 경우 총매출액의 7%를 12∼15년간 로열티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고·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딴 이른바 「국산박사」인 김박사 개인이나 소속회사 입장에서는 이만큼 세계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니 어깨가 으쓱할만 하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국가들을 주축으로 한 선진국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국가차원에서는 안타까운 점이 적지 않다.
김박사는 『신물질은 가까스로 찾아냈지만 독성시험과 임상실험을 제대로 할 능력이 아직 국내에 없어 그락소사에 샘플만 공급할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에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애석해한다.
신물질의 합성→각종 실험→미국식품의약국(FDA) 등 각국 의료전문기관의 허가획득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모두 독자적 기술로 마무리해 신약을 대량생산해 내면 막대한 국가수입을 올릴 수 있으나 우리 과학기술의 한계로 상당부분 놓쳤기 때문이다.
앞으로 김박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선 신물질로 만들어질 약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공정을 개선하고 그락소사에 공급할 시약의 샘플량을 늘리는 것이다.
신물질의 보완작업과 함께 지금까지의 주사놓는 항생제 대신 먹는 항생제를 생산해낼 수 있는 또다른 신물질을 찾는 작업은 김박사 본인의 말처럼 「자존심을 건 또한판의 승부」가 될 것이다.
『험한 길을 또다시 가야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정에서 겉도는 생할패턴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그는 『하지만 박사과정때 아예 집에 못들어 갔던데 비하면 요즘은 늦게나마 집에 들어갈 수 있고 쉬는날 애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사정이 엄청 나아진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빙그레 웃는다.<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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