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한류' 망치는 표절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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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의 대표적인 민영방송인 후지TV는 한국의 KBS와 SBS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8일 후지TV의 홍보실장에 따르면 한국 방송사들의 '스펀지'와 'TV장학회'란 프로그램이 후지TV가 매주 수요일 밤 골든타임에 내보내고 있는 '트리비아의 샘'을 표절했다는 이유다. '트리비아의 샘'은 평균 시청률이 23.7%로 후지TV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간과하기 쉬운 잡다한 상식을 시청자들이 보내오면 그 상식의 가치를 패널들이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후지TV는 지난달 KBS.SBS에 "프로그램의 형식이 너무 비슷하다"며 '항의성 질의서'를 보냈지만 두 방송사에서 "표절이 아니다"는 답신을 받았다.

한국의 '일본 프로 베끼기'시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에도 늘 그래왔고 이번에도 그렇듯, 양측의 주장이 맞서 누구 주장이 맞는지 검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후지TV가 실제로 소송을 제기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위야 어떻든 이번 시비는 일본에서 어렵게 싹트기 시작한 '한류(韓流)'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 일본뿐 아니라 대다수 국가의 경우 드라마는 물론이고 퀴즈.오락.버라이어티 쇼 같은 프로그램은 내용이 조금 달라도 큰 골격이 유사하면 예외없이 해당 외국 방송사에서 돈을 주고 사오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일본 방송계의 한 지인은 "최근 '겨울 연가'등 수준 높은 드라마로 좋아진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한국의 대중문화를 칭송하던 일본 언론의 보도도 이번엔 삐딱한 내용 일색이다.

한국 방송사들의 정치(精緻)하지 못한 결정 하나는 수년간 애써 조성한 '한류 붐'을 한순간에 망가뜨릴 수도 있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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