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서울 첫 공연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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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2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어딘가로 훌쩍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천막 안에 만들어진 공연장 역시 을씨년스러운 봄비처럼 어두웠다.

그러나 그 공간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간으로 채워졌다. 출연진이 객석 바로 위에서 떨어질 듯 아찔한 곡예를 선보일 땐 관객의 손에서도 땀이 나왔고, 무대 꼭대기까지 높이 날아 네 명의 남성이 한 명의 몸으로 겹치는 순간엔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세계 공연계의 혁명'이란 명성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마침내 한국에 상륙했다. 그들의 첫 레퍼토리는 '퀴담'(Quidam). 29일 오후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광장 내 빅탑 공연장에서 첫 선을 보인 무대는 여느 무대와 확연히 달랐다. 눈부신 곡예와 아련한 음악, 빠른 템포의 극 진행 사이 간간이 비치는 여운과 웃음…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다양한 느낌과 감성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공연은 한 가정의 거실에서 시작된다. 신문 읽기에 집중하고 있는 아버지, 라디오에만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가 거실 양쪽의 안락 의자에 앉아 있다. 심심해진 어린 딸 조이는 혼자서 즐겁게 놀아보려 하지만 다시 지루해진다. 이때 프렌치 코트를 입은 머리 없는 퀴담이 우산을 쓰고 등장하면서 주인공 소녀는 그녀가 꿈꾸었던 세상 속으로 쑥 빠져 들어간다.

스토리는 별반 중요하지 않다. 1막과 2막으로 구성된 공연 사이 관객은 몇 가지 에피소드와 만난다. 처음 대형 바퀴를 끌고 나온 곡예사는 바퀴 안과 밖을 마음대로 오가며 관객을 서커스의 세계로 인도한다. 4명의 소녀가 공중 팽이를 들었다 던졌다 하는 장면은 마치 고난도 리듬체조를 연기하는 듯 보였다. 무엇보다 2막 막판 두 남녀가 몸을 겹치며 펼치는 연기는 인간의 신체라곤 전혀 믿기 힘든 '몸의 미학'을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조금 진지하다 싶을 때엔 어김없이 객석의 관객을 즉흥적으로 무대로 이끌고 나와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 '긴장과 이완'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겉은 화려한 곡예의 연속이지만 '익명의 행인'이란 제목의 뜻처럼 공연은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관계의 단절을 이야기했다. 질 스테크루아 제작 감독은 "태양의 서커스 레퍼토리 중 가장 시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좌석은 2500여석. 그러나 축구 전용관처럼 객석과 딱 맞붙은 무대는 출연진의 숨소리,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전달해 줄 만큼 밀착돼 있다. 그래서 가장 싼 좌석인 5만5000원에서도 별 불편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퀴담'의 미덕이다.

◆ 태양의 서커스는=1984년에 캐나다에서 창설됐다. 1년 티켓 판매액 1조원, 단원 3000여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공연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상설 공연 6개, 투어 공연 7개 등 2007년 현재 13개의 공연 레퍼토리를 가지고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최근 미국 전문 브랜드 리서치 기관 '인터브랜드' 조사 결과 코카콜라, 구글 등에 이어 22위의 브랜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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