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점이상 2%도 안돼요”(일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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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학력고사출제 사령탑 오덕렬 중앙교육평가원장/“너무 쉽다”우려 안해도 될 수준/계속 쉽게 출제 방침 변화없다
대학입시는 우리사회가 해마다 치르는 「열병」이다.
네명중 세명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좁은 문앞에서 수험생·학부모들은 애가 타고 피가 마를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이 직·간접으로 이해당사자가 되고보니 저마다 나름대로의 입장과 견해를 갖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국가가 대학입학시험을 관리한지 12년째.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 본고사라는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2년 앞두고 올해는 문제가 갑자기 쉬워져 논란이 크다.
학력고사 출제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중앙교육평가원으로 오덕렬 원장(56)을 찾아가 말많은 입시에 대해 따져물었다.
지난해 7월 교육부 기획관리실장에서 자리를 옮겨 「학력고사혁명」을 일으킨 오원장은 서울무악재 중턱 서대문중학교 구내의 임시 사무실에서 일부의 비판여론에 신경이 쓰이는듯 상기된 모습으로 『언론에서 좀 도와달라』고 말문을 열었다.
­학력고사문제가 지나치게 쉬웠다고 말들이 많습니다. 난이도조정에 실패한 것 아닙니까.
▲절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쉽게 출제한 것입니다.
대학입학시험은 크게 대학수학능력평가와 고교교육의 정상화라는 두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출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11년동안의 시험은 수학·영어를 중심으로 너무 어렵게 출제돼 대학의 선발기능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일선고교에서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학급 학생의 10%밖에 안되는 5∼6명을 중심으로 수업을 하게 되고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별도의 도움을 받기 위해 과외에 의존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부 상위권대학을 제외하고는 공통필수과목인 수학과 영어는 성적이 워낙 떨어져 채점하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기현상까지 벌어졌습니다.
고교교육의 정상화위에서 대학수학능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평가원의 기본방침입니다.
­그같은 취지에 동감은 하지만 예고없이 갑자기 쉬워져 혼란을 준건 문제 아닙니까.
▲그 점은 인정합니다. 81년이후 매년초 그해의 출제방침을 「고교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이면 어려움없이 풀수 있는 수준」이라고 발표해왔습니다만 평가원이 출제교수들에게 구체적인 출제기준을 제시하지 않은데다 선발기능쪽에 과도하게 비중을 두다보니 기본방침과 실제문제에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 6월부터 출제교수들에게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수험생들이 정말 쉬워졌다고 느낄 수 있도록 출제해달라고 거듭 강조해 방침을 실현한 것입니다.
­후기대와 내년 입시도 계속 같은 수준으로 출제한다는 방침입니까.
▲그렇습니다. 교과서의 범위안에서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 쉽게 풀 수 있도록 철저한 출제관리를 통해 이번처럼 난이도를 유지해나갈 것입니다.
­학력고사제도 마감을 1년앞두고 왜 막판 뒤집기를 하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국가고사가 내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후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고사가 시행됩니다. 이 시험도 이번처럼 전체 수험생의 예상득점이 1백점만점에 평균 60점이 되도록 난이도를 유지할 것입니다.
­이번 시험이 너무 쉬워 우수한 학생을 가려내는 변별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수한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최상위대학 인기학과에서는 그같은 걱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같은 시각은 대학취학률이 10%에도 못미치는 엘리트교육체제에서나 통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전문대학 이상 취학률은 50%에 접근해 대중교육시대의 다음단계인 보편화교육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국가차원의 교육평가도 이젠 상위권 중심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변별력 얘기를 많이 해 실제로 서울시내 10여개 주요고교를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문제가 쉬워 불이익을 보았다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또 중위권 대학이하에서는 오히려 변별력이 높아졌다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시험에는 감정적인 조절기능도 있는 것 아닙니까. 너무 어려우면 어려워 떨어졌다고 반발하고,또 쉬우면 운이 없어 떨어졌다고 생각하게 돼 난이도의 감정지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고득점 탈락 사태는 감정적으로 반발이 예상되는데요.
▲시험은 근본적으로 상대적인 평가지요. 서울대 같은데서 고득점 탈락자가 특히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각 대학에 확인해보니 3백점이상 탈락자가 연대에 75명,포항공대에 10명이 있었지만 서강대·성균관대·이대 등에서는 한명도 없었어요. 이 정도 수준은 시험의 속성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봐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3백점이상 득점자가 전체적으로 1만2천명 남짓 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전체수험생의 2%에도 못미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난이도 논쟁의 허구는 금방 밝혀집니다.
­기대심리 때문에 재수가 늘지 않을까요.
▲부분적으로 재수심리를 부추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시험문제의 유형에 비추어 볼때 재수에 대한 불안은 오히려 종전보다 더 커질수도 있습니다.
­이번의 쉬운 출제가 고교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과외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과열된 열기만은 어느정도 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국어·영어·수학등 필수과목을 어렵다고 포기하는 학생들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하향평준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학습의욕을 높여 더욱 심도있는 교육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을 굳게 갖고 있습니다. 어렵든,쉽든 어차피 일정 숫자만 관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만 시험이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어서는 교육 자체가 왜곡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국가가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국가고사는 일정수준 이상의 학생들을 기준으로 시행되고 각 대학이 나름대로의 잣대를 정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는데 동감입니다. 94학년도부터 실시되는 대학본고사의 문제가 지나치게 어려우면 그때는 고교교육에 미치는 영향때문에 비난의 화살이 대학으로 돌아가겠지만 입시판도는 훨씬 안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1시간여 인터뷰를 마치고 난 결론은 역시 교육문제는 「단칼의 해결」이 어렵다는 원론의 확인이었다.<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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