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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고문판결」 고무적이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강민창 전치안본부장등 박종철군 고문사건의 피고인들에 대한 2심의 무죄판결이 깨진 것은 고문추방을 위해서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위해서나 다같이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사건의 전모와 앞뒤 사정으로 보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고인들이 유죄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만한 내용의 이 사건에 대해 뜻밖에도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고문추방의 의지가 사법부에서조차 확립되어 있지 못한데 실망했고 너무도 뻔한 유죄의 근거들을 증인이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해 버린데 대해 분노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대법원의 원심파기로 국민들은 뒤늦게나마 그때의 분노를 다소나마 삭일 수 있게 되었으나 이번 판결 하나만으로 우리 사회의 고문추방 의지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아직도 종적이 묘연한 상태이고 그렇게 큰 사회적 충격을 준 박종철군 사건이후에도 수사기관들에서의 반인륜적 고문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는 물론 행정부도 고문 추방에 대한 의지를 다시한번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화를 내세우고 있고 또 그것이 진전되고 있다고 자랑을 하면서도 그 뒤안길에서는 여전히 고문이 행해지고 있다면 그러한 주장도,자부도 한낱 빈말이며 거짓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 고문과 같은 전근대적이고 반인륜적인 불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권력의 상층부에서조차 인권의식이 뚜렷하지 못해 고문을 수사를 위한 불가피한 관행쯤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서의 고문행위에 대한 고발이나 폭로는 많아도 그에 대한 수사나 관련자의 처벌은 늘 흐지부지 되어버리곤 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고문은 대개 은밀히 행해지기 때문에 수사기관 자체내에 인권의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는 한 문제화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상층부의 인권의식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권력 상층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 하지만 법적·제도적으로 보완해야할 점도 없지는 않다. 그 첫째는 수사의 공개화다. 공개적인 수사를 한다면 고문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행 우리의 법과 제도는 헌법상의 권리인 변호사로부터 도움을 받을 권리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 이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고문이 문제가 되면 자체수사를 철저히 하고 고문사실이 밝혀지면 예외없이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검찰이나 사법부도 고문사건에 대해서는 최고형을 매겨야 한다. 또한 고문의 필요성 자체가 없어지도록 검찰에서의 자백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판례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고문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치다. 정부는 그 출범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고문추방을 위해 과감한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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