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은행턴 사연(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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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캐럴송이 은은한 레스토랑에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고 디스코테크에서 춤도 추려면 한달용돈 5만원으론 턱없이 모자랐어요. 멋진 옷도 새로 사입고 싶었고….”
22일 오전 10시쯤 서울 청량리 경찰서 형사계.
금고를 털기위해 은행에 들어갔다가 이날 새벽 경비원에게 붙잡힌 고교2년생 「은행털이범」 김모군(18·서울C고2)은 잠시 미수에 그친것이 아쉬운 표정이었다.
『은행에는 여기저기 돈이 널려 있을 것 같아 학교를 오갈때마다 유심히 봐두었어요.』
짧은머리에 두꺼운 파카점퍼·체육복 바지차림의 다소앳된 모습이었지만 범행과정을 비교적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김군이 유흥비 마련을 위해 별러오던 「은행털이」를 행동에 옮긴 것은 22일 오전4시쯤.
누나(26·회사원)가 집을 비우자 김군은 7개월전부터 깊이 사귀어오던 여자친구(18)와 단칸자취방에서 오전3시30분까지 함께있다 헤어진 직후였다.
소주 반병을 들이키며 「거사」를 위한 마음을 가다듬은후 김군은 범행대상으로 물색해 놓았던 외환은행 휘경지점으로 가 은행옆 은행나무를 기어올라 창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나 금고와 서랍을 뒤지던 김군은 6분만에 전자감응장치의 경보음을 듣고 출동한 이 은행 경비원 4명에게 붙잡힌 것.
『2년전 전남 익산에서 서울로 전학한 뒤론 공부에는 흥미를 잃어버렸어요. 게다가 서울친구들의 씀씀이나 옷치레에는 열등감까지 느껴야했어요.』
조서를 받던 담당형사는 『땀흘리지 않고 내욕심만 채우면 된다는 성인사회의 부도덕이 순수하게 자라야할 우리 청소년들에게 전염되고 있다』며 허탈해 했다.<박승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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