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제주' 악순환 벙커에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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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고, 비 오는 날도 많다. 산간 지역의 경우 골프 치기 좋은 화창한 날씨는 연간 80일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제주도 갈 바엔 중국이나 일본 간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레이크힐스 골프장 윤영식 사장은 "육지에서 골퍼들이 오지 않아 지난해에만 54억원의 적자가 났다. 파격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정은 더 나빠진다. 제주에는 현재 21개 골프장이 영업 중이며 9개는 공사 중이다. 허가를 받은 곳까지 합치면 42개까지 늘어난다.

'비싼 제주도'로 골프장뿐 아니라 제주도의 관광산업 자체가 추락하고 있다. 지난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박민영(37.회사원)씨는 "제주의 캐치프레이즈가 '아름다운 제주'가 아니라 '비싼 제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입장료도 비싸고, 특히 음식값 부담이 크다. 그래서 해외 관광객 유치는커녕 국내 관광객도 해외로 빼앗기고 있는 형편이다.

과거엔 '아까운 외화를 낭비하지 말자'며 애국심에 호소라도 해 봤으나 가격 차이가 커지면서 무의미해졌다. 골프투어 상품을 파는 시에프랑스의 이복희 사장은 "2박3일에 10만원 정도 비싸다면 제주도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저녁에 간단한 술자리까지 포함하면 동남아나 중국에 가는 게 1인당 50만원 이상 싸게 든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7월 특별자치도가 됐다. 자치권을 활용해 과감히 규제를 풀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세계 최고의 휴양지가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나도록 별 성과가 없다. 외국인 투자 유치도 6건에 불과하다.

◆ '싼 제주'가 살 길이다=레이크힐스 골프장이 회원권 분양가를 낮춘 것은 살기 위한 자구책이다. 회원권 환급 시기인 5년이 지나면서 회원들이 환급을 요구하자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살길을 찾은 것이다. 3000만원짜리 회원권(5년 뒤 환급)을 분양하면서 350명이던 회원 수를 2000명까지 늘려 환급금을 마련할 생각이다. 그린피도 비회원 주말 기준으로 17만원에서 15만원으로 낮추고, 회원 동반자에 대해서는 30% 정도 할인할 예정이다. 윤 사장은 "'싼 제주'가 되면 일본.중국과도 경쟁해볼 만하다"며 "비싼 그린피를 받던 다른 골프장도 경쟁적으로 그린피를 낮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주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특별자치도에 걸맞게 사소한 규제도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창희 제주특별자치도 추진단장은 "정부 부처에서 다른 도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풀지 않은 규제가 아직 많다. 특별법을 만들어 놓고도 규제를 남겨 놓는다면 40㎞ 지점에서 마라톤을 포기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제주=성호준 기자

[알려왔습니다]
3월 23일자 3면 '비싼 제주 악순환 벙커에 빠졌다' 기사와 관련, 한국골프장경영협회 제주협의회는 기사에 적시된 골프 여행 비용(2박3일 105만원)보다 싼 상품도 있으며, 제주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의 '맑음'과 '구름 조금'이었던 날은 180일가량으로 기사의 '산간 지역의 경우 골프 치기 좋은 화창한 날씨는 연간 80일 정도'보다 많을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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