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양주(카시스)를 넣어 만든 막걸리 칵테일 '막카'
막걸리가 바다 건너 일본 땅에서 여성층의 인기를 얻으며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급스럽지 못한 술' '뒤끝이 좋지 않은 술' 등의 이미지로 마시기를 기피하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막걸리는 달면서 독하지 않아 여성들이 마시기 좋잖아요. 게다가 막걸리에 다른 술이나 음료수를 타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거든요. 그런 점들이 일본 여성층에 지지를 얻는 이유이겠죠." 도쿄에서 한국음식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핫타 야스시 의 설명이다. 핫타 역시 요즘 한식을 먹을 땐 생맥주 대신 맥주와 막걸리를 절반씩 섞어 한잔 쭉 들이켜고 시작한단다.
사실 일본에도 막걸리와 비슷한 도부로쿠(濁酒)란 술이 있다. 찐 쌀에 밀과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것인데 막걸리보다 걸쭉하고 건더기가 씹히는 술이다. 예전에는 일본의 가정집에서도 만들어 마셨는데 법으로 술 제조를 금지하면서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일본인들이 막걸리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쉽게 친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도부로쿠의 존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막걸리 사발을 높이 들어 건배 하는 일본 여성들.
이동막걸리를 수입해 일본에 판매하는 ㈜이동재팬의 김효 대표는 "한국 막걸리의 수요가 최근 몇년 사이 부쩍 늘어 요즘은 '이토요카도' '자스코' 등 대형 수퍼체인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며 "수입량이 한 달에 30만 병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자 막걸리 바까지 등장했다. 신주쿠역 근처에 있는 막걸리 바 '돼지마을'. 메뉴판에 올라 있는 막걸리만 30여 종이나 된다. 검은콩 막걸리.누룽지 막걸리.배 막걸리 등 원료를 알 수 있는 막걸리부터 이동막걸리.부산 산성막걸리.제주 막걸리.강원도 막걸리 등 한국 지역이 등장하는 막걸리까지 한국산 막걸리 종합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메뉴판을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20여 가지의 막걸리 칵테일이 등장한다. 맥주와 섞은 것, 진과 혼합한 것, 우롱차로 희석한 것 등 다른 술이나 음료수로 다양한 맛을 낸 것들. 값은 한 잔에 550~650엔(4000원 내외), 한 병이나 한 항아리는 1380~1780엔(1만3000원 내외). 도쿄에서 한국산 소주 한 병이 800~1000엔(7000원 내외)정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술값으론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래도 주말 저녁에는 자리가 없을 만큼 일본인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도쿄=유지상 기자
#일본의 막걸리 안주=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빈대떡에 막걸리' 스타일의 우리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빈대떡.파전.지지미를 고집하지 않고 막걸리를 맥주처럼 편하게 마신다. 감자탕이나 불고기 등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마신다.
'돼지마을' 막걸리 바에선 막걸리 안주로 추천하는 메뉴가 있다. 창란젓을 넣은 감자샐러드와 창란젓 카나페(사진). 창란젓을 넣은 감자샐러드는 삶은 감자를 으깨 만든 샐러드에 창란젓을 잘게 다져서 넣은 것. 부드러운 감자에 창란젓의 매콤하게 씹히는 맛이 더해져 막걸리 맛을 돋우는데 손색이 없다.
창란젓 카나페는 마른 김 위에 조각 치즈.생사과.창란젓.무순를 순서대로 올린 것.
막걸리가 아닌 한국산 소주나 복분자주와도 어울릴 만한 안줏감이다.
화이트아이
#막걸리 칵테일 무려 20여 종=막걸리 칵테일은 다른 술이나 과일주스.음료 등을 섞어 만든 것. 집집마다 특이한 이름을 붙인다. '돼지마을'에선 막걸리와 맥주를 섞은 것을 '화이트 아이'라고 부른다. 신주쿠 한국음식점에선 사이다(막사), 오렌지주스(막오), 우유탄산음료(막카루), 사과주스(막링)를 섞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메뉴판에 20여 가지 칵테일이 있다. 일부 음식점에선 커피.우유.요구르트.우롱차와 혼합해 도수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독주인 진이나 카시스(리큐어)를 넣어 오히려 독하게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막걸리를 처음 접하는 일본인들은 생소함 때문에 막걸리 칵테일로 시작하는데 점차 익숙해지면 아무 것도 섞지 않은 막걸리를 잔술로 주문하기 시작한다고. 그러다 맛에 길들여지면 병이나 항아리로 주문해 한국 사람들처럼 마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