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단장벽 허물고 통일 첫걸음(남북화해시대: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합의서」 서명 의의와 전망/46년간의 「비정상」 역사적 청산/상호실체 인정… 교류·군축 “물꼬”
13일로 세계지도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지역이 사라지게 됐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의 정부당국이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공식합의서를 만들어낸 통일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남북간에는 과거 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있었지만 그것은 비밀 지령에 의해 작성되고,선언적인 내용으로 일관해 있다는 점에서도 양측의 공식 고위당국자간에 체결된 이번 합의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축이나 핵문제와 같은 극히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도 합의를 도출,앞으로 양측간에 통일로 향하는 수많은 합의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물꼬를 텄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헌장과도 같은 이 합의서를 남북이 채택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남북은 합의서가 효력을 발생한지 1개월내에 각분야의 이행을 위한 정치,군사,교류·협력분과위를 고위급회담 산하에 각각 설치하고,3개월내에 각분야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갈 「판문점연락사무소」「군사위」「경제교류·협력위」등 3개 실천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이는 남북간의 한시적인 현안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독일의 기본합의서와 같이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양측의 합의로 수정되거나 폐기될 때까지는 기본관계가 지속되도록 보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남과 북이 정상적인 공식창구를 통해 협의를 시작함으로써 양측관계가 46년간의 비정상적인 휴전체제에서 정상적인 평화체제로 이행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합의서는 서문에서 남북간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화해」분야의 조항들은 다분히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현실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하고 내정을 간섭하지 않으며 비방도,파괴·전복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의 정전상태를 남북이 주체가 되어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로 하고,불가침분야에서는 그 경계선을 현재 양측의 관할구역으로 규정,사실상 주권의 권한이 미치는 영토로 인정하는 등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이로써 북한이 그동안 한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미국등 외부세력만을 상대로 하려한 끝없는 논쟁은 종식된 셈이다.
양측은 이를 바탕으로 판문점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상시적인 협력과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해 기존의 직통전화를 발전시키고,국제무대에서도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이제까지 난관에 부딪쳐 있던 북한­일본,한국­중국간의 관계개선이 급진전되게 된 것이다.
남북간의 논란거리였던 「신뢰구축」과 「군축」의 선후문제는 이를 명시하지않고 함께 병기,일괄 처리했다. 그러나 어쨌건 남북 양측에 엄청난 경제적인 부담이 되었던 군사비가 장기적으로 감소될 수 있게 됐으며,이 「군비감축을 통해 인민의 기본 욕구를 증진」시키기로 했다.
이같은 불가침 합의는 또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굳이 북한이 제기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스스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주둔군 감축계획과 미국내 여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로 군사훈련과 부대이동의 사전통보,군인사교류 외에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공격형무기의 상호검증」을 규정함으로써 핵무기를 비롯한 화학·생물학 무기까지 사찰할 수 있는 길을 합의서내에도 마련해 놨다.
이러한 정치·군사문제보다 실제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교류·협력분야다. 북한측도 이 합의서의 서명을 요구하며 『경제교류협력위 설치에 합의할테니 경제교류를 활성화하고,해외에도 공동진출하자』고 강조한 것은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한의 특수한 경제사정을 감안치 않더라도 동구권의 붕괴이후 사회주의 국가간의 교역선이 거의 단절됨으로써 북한경제는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 있다. 여기에 일본등 외국이 북한 경제의 지배적인 협력상대로 되는 것은 남북간의 협력 확대보다 통일이후의 민족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소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도 발효후 6개월내에 남북경제교류협력위를 설치하고,물자교역·자원공동개발·합작투자·대외공동진출등 민족내부교역을 강화키로 한 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남북간에는 90년 이후 간접교역이 점점 늘어 이제 연간 1억달러에 이르고 있어 직접교역은 급격히 늘어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또 이산가족의 서신왕래·상봉·방문·재결합에도 합의해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이 풀릴 길을 터놨다.
이밖에도 경의선,문산∼개성간 도로등 육·해·공로를 개설하고,쌍방 주민의 자유왕래를 실현키로 했다.
이밖에도 신문·라디오·TV·출판물등의 상호협력교류를 실현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양측은 이와 연계된 핵문제도 연내에 판문점에서 구체적으로 협의한다는데 합의함으로써 양측간의 쟁점사항들이 모두 정리된 셈이다.<김진국기자>
□남북대화 주요일지
71.9.20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개시
72.7.4 남북공동성명
72.8.29∼9.2 남북적십자 본회담(제1차)(73.7.10∼
13 제7차회담까지 진행)
72.11.30∼12.1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제1차)
(73.6.12∼13 제3차본회의까지진행)
73.8.28 북측의 대화중단성명
80.2.6 남북한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제1차)
(80.8.20 제10차접촉까지 진행)
84.11.15 남북경제회담(제1차)
(85.11.20 5차회담까지 진행)
84.11.20 남북적십자 본회담 예비접촉개시
85.5.27 남북적십자 본회담(제8차)
(85.12.3 제10차 본회담까지 진행)
85.7.23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제1차)
(85.9.10 제2차 예비접촉까지 진행)
85.9.20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88.8.19 남북국회회담준비 접촉
(90.1.24 10차접촉까지 진행)
89.2.8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제1차)
(90.7.26 제8차예비회담까지 진행)
89.3.9 남북체육회담(제1차)(90.2.7 제9차회담까지
진행)
89.9.27 남북적십자 실무대표접촉개시
(90.11.8 제8차접촉까지 진행)
90.7.6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실무대표접촉(제1차)
(90.7.12 제2차 접촉까지 진행)
90.9.4∼7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서울)
90.10.16∼19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평양)
90.11.29 남북체육회담(제1차)(91.2.12 제4차회담
까지 진행)
90.12.11∼14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서울)
91.9.17 남북유엔가입
91.10.22∼25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평양)
□3개분야별 위원회와 기능
●분야:화해
본회의산하기구(6차회담서설치):정치분과위
실행기구(3개월내):연락사무소(우선 판문점설치)
기능:△상호 긴밀한 협의와 연락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
△국제무대 협력
●분야:불가침
본회의산하기구(6차회담서설치):군사분과위
실행기구(3개월내):군사공동위
기능:△주요군사훈련 및 부대이동 사전통고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인사 교류
△군비축소
△상호검증
●분야:교류협력
본회의산하기구(6차회담서설치):교류·협력 분과위
실행기구(3개월내):경제교류·협력공동위
기능:<경제>
△물자교역
△자원공동개발
△합작투자
△공동대외진출

<통행>
△언론·출판물교류 협력
△이산가족 서신왕래·상봉·방문·재결합
△주민왕래
△육·해·공로 개설
△교육·문화·예술·종교·보건·환경·체육·과학·기술교류

<통신>
△우편·전기·통신교류 시설 설치 개통
◎합의서 어떤 절차 거쳐 발효되나/양측 국회 지지결의나 추인과정 남아/내년 2월 6차회담서 문본 교환·발효
남북간 합의서가 채택됨에 따라 남북양측은 각자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내년 2월 6차회담석상에서 그 문본을 상호교환,합의문이 공식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합의서는 『쌍방이 본합의서에 서명한 이후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치를 거쳐 그 문본을 상호 교환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국회의 동의형식을 밟아 국민적 합의를 얻는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는 「정부의 보고」→「국회의 지지결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동의 절차가 이처럼 축소 조정된 것은 이 합의서의 성격 때문이다.
72년 12월21일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유엔동시가입과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던 동·서독의 경우 조약체결에서 발효까지 꼭 6개월이 소요됐다. 당시 서독은 연방 상·하원의 비준절차를 마쳤고,동독은 73년 6월 기본조약을 아예 법률로 확정지음으로써 그해 6월20일 문서를 상호교환,다음날부터 발효됐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번 합의서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법상 「조약」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양측이 양해했다. 원래 우리측은 이를 다른조약과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경과규정을 두어 조약으로서의 효력까지는 부여하지 않았으나 북측은 이 마저도 거부해 이를 아예 삭제했다.
따라서 합의서는 조약은 아니며 외교적협정기능도 못갖게됐다. 이는 남북양측이 분단상태를 잠정적 상태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즉 ▲조약에 「준」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앞으로 설치될 분과위원회에서 나올 합의사항들에도 선례가 될 국회동의 절차를 일일이 밟는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또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의무」 이행차원에서 보아야 하므로 대통령의 국회보고­국회의 지지결의안 채택같은 절차를 밟는 것이 통일논의의 국민적 합의도출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진단이다.
한편 북한의 경우 헌법(96조)에 주석의 조약비준·폐기권이 규정돼 있어 최고인민회의의 형식적 추인을 거쳐 비준절차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노재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