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비 부풀리기 판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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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씨의 경우 지난해부터 예산군 삽교읍 목리 2만5000㎡의 밭에 인삼을 심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도가 뒤늦게 과도한 보상을 노린 행위라며 단속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내 땅에 무엇을 심든 웬 참견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 11개의 혁신도시 예정지에 보상을 노린 나무심기 열풍이 불었다.

파주 신도시(285만 평)의 경우 편법보상이 판을 치고 주변 땅값이 급등하면서 토지보상비만 전체 사업비(7조7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3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당초 평당 700만원으로 잡았던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1000만원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신도시 개발이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대규모 공공개발 사업에서 보상비를 부풀리기 위한 각종 편법이 판을 치면서 보상비가 크게 뛰고 있다. 이덕복 국토도시연구원 연구개발처장은 "편법 보상이 기승을 부리면서 보상단가가 올라가고 있다"며 "그 결과 SOC 투자비용이 늘고 국민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일 기획예산처가 주최한 국가재정운용계획 토론회의 주제 발표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처장에 따르면 SOC사업의 토지수용 보상단가는 2001년 ㎡당 4만7500원에서 2005년에는 11만300원으로 올라갔다. 지난 5년간 전국의 땅값 상승률은 연평균 3.95%에 머물렀지만 매년 보상단가는 4배가 넘는 18.64%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고속국도 건설사업의 경우 착공 4년차의 보상단가가 착공 1년차 협의 보상가의 1.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도로공사 자료).

이 처장은 "각종 사업이 계획된 뒤 확정되기까지 2~3년간의 기간이 걸리고, 이 기간 안에 나무를 심거나 창고를 설치하는 등의 편법이 난무해 보상단가가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도 보상비 부풀리기가 명백할 경우 보상금 책정 때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농작물은 판례상 남의 땅에 심어도 심은 사람의 소유권이 인정돼 함부로 뽑아내는 강제적 정책수단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집단 반발에 굴복해 적당히 타협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얌체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사례로 발표된 A지역은 댐 건설이 확정된 뒤 불과 몇 달 사이에 예정 부지 주위에 국화.배나무.사과나무 등이 심어졌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인 1991년 3078억원으로 잡았던 보상액은 토지 매입이 완료된 2000년 6월까지 1조1748억원으로 불어났다.

어촌인 울산시 울주군에서는 원자력발전 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갑자기 해녀 등록자가 급증했다. 50명에 불과했던 해녀는 232명까지 늘었고, 1명이었던 남자 해녀 등록자도 66명이나 됐다. 어업권 보상을 노린 '짝퉁' 해녀 등록자들 때문이었다.

이 처장은 편법 보상을 막기 위해 SOC사업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매년 예산범위 내에서 보상을 하는 연도별.단계별 보상방식 때문에 보상기간이 길어지고 비용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반발과 주민 설득 작업으로 인해 시간과 절차가 더 늘어나는 추세다.

그는 ▶보상비를 짧은 기간에 집중 투입해 보상기간을 단축하고 ▶보상가격 기준시점을 사업 고시일 1년 전으로 앞당겨 개발이익을 보상에서 배제하며 ▶감정가격 산정 시 보상선례보다 공시지가 위주로 따져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땅값 상승으로 인한 보상가 상승은 어쩔 수 없지만 과다보상의 경우 철저히 단속을 통해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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