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해진 북방정책 궤도수정/소 연방 붕괴… 동북아 「힘의 균형」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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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중국의존 가속… 남북관계 영향/소 통한 대북정책 어려워져
소연방의 해체로 한국의 대소외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정부는 일단 시급한 대소경협 자금의 회수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주소대사관의 이강두 경제공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타 분야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전망 때문에 상황 분석 이상의 대책에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소련의 표류에 섣불리 달려들기에는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시공화국의 「독립국가」선언으로 소연방이란 틀은 사실상 와해됐다. 연방정부의 노력에 관계없이 이들 공화국이 소련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소련 내부에 팽배한 민족주의 경향을 봐도 이란과 같이 강력한 결속력을 갖는 연방으로의 회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따라서 이제까지 정부가 외교적인 상대역으로 삼아온 연방정부는 개별공화국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게됐다. 정부는 일단 내년중으로 하바로브스크와 알마아타에 설치키로 했던 총영사관을 사태가 좀더 발전할때까지 지켜보기로 하고,공화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해나가는 선에서 관망자세를 견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현재의 추세대로 공화국들이 독립해 나가면 개별공화국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한국으로서는 특히 지역적으로 동북아지역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를 강조해나갈 것이 분명하다. 슬라브 3개국의 독립국 공동체가 외교권을 갖는다고는 하나 현재의 추세로 보아 유럽공동체(EC)의 수준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도 3공화국의 선언이 현실화 되더라도 현재 모스크바에 설치돼 있는 대사관은 「공동체」의 행정부가 설치될 민스크로 옮기기 보다는 모스크바에 그대로 두고,민스크에는 별도의 벨라루시 대사관을 설치해 운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연방정부가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이 선뜻 나서 개별공화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어렵다. 또 개별공화국내에도 소련내에 열병처럼 번지는 민족주의의 바람을 타고,소수민족들의 지방정부들까지 독립을 선언하고 있어 최종적인 형태가 어떤 것이 될지 아직 점치기 어렵다.
정부관계자들이 ▲소련내의 추이와 ▲국제적인 대응을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경협문제 등 대소협력의 창구문제가 있고 외교교섭의 대상을 어디로 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방한중인 하스블라토프 러시아공 최고회의 의장도 9일 연방의 대외채무를 러시아공화국이 승계할 것이라고 재확인 했듯이 이를 상환받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낙관론이 정부를 지배하고 있다.
대외경제 교섭을 러시아공화국이 맡을 것이란 보도나,제정러시아의 채무도 소련이 승계하는 등 정변이 일어났다고 러시아가 채무를 거부한 적이 없다는 선례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소연방의 해체는 동북아의 힘의 균형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소련의 해체과정은 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예측처럼 핵무기를 동원하는 내전을 몰고올 위험도 안고있다. 이러한 혼란은 소련체제가 안정되기 어려운 만큼 쉽사리 정리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군다나 소련이 공화국별로 해체되면 정치·경제적인 체제 재정비를 위해 상당한 시일이 소요돼 세계질서는 미국과 EC,일본이라는 3극체제로 재정비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신질서는 동북아의 소련공백에 일본의 경제력이나 중국의 힘이 들어설 여지를 내주게 된다. 일본의 경우 경제력을 정치·군사적인 힘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시기여서 일본의 국제적 부상 가능성이 주목된다.
동북아의 현상태를 혼돈상태로 몰지않기 위해 주변열국들간의 다자관계가 새로이 모색될 수밖에 없으며,이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제안한 「2+4회담」을 변형한 형태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소련의 대북한 지원중단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서게 되고,상대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소련의 해체가 북한에 주는 심한 심리적인 압박도 대중의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여,북한을 향한 우회지점으로 대중접근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게 될 것으로 점쳐볼 수 있다.
중국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면 지금까지 소련을 중심으로 전개해온 북방정책의 전면 재검토 요구도 제기될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소련보다는 훨씬 보수적이며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이다. 따라서 소련을 통한 대북우회정책은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한국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으로는 기대할 수 없어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은 보다 장기화될 것이다.
그러나 핵문제에 대해서는 중국도 우려를 가지고 있으므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며 부분개방 정책을 취하고 있는 중국의 점진적인 개방노력이 북한에 대해서 변화의 압력으로는 작용할 것이다.<김진국기자>
□소연방의 붕괴과정
22.12.30 소연방 성립
85.3.11 고르바초프,공산당서기장 취임
5.25 고르바초프,최고회의 의장당선
90.1.11∼13 발트3국 분란·독립운동 격화.
2.7 당중앙위총회,일당독제 포기의 신강령채택
3.11 리투아니아 독립선언
3.15 고르바초프,대통령 취임
3.30 에스토니아 독립선언
5.4 라트비아 독립선언
5.29 옐친,러시아공 최고회의의장에 피선
7.12 옐친 등 급진개혁파,공산당탈당
12.20 셰바르드나제,보수파대두 항의 외무장관 사임
91.2.3 발트3국,독립여부 국민투표에서 압도적다수 독립찬성
6.12 옐친,러시아공 대통령 당선
7.24 신연방조약 9개공화국 합의
8.19 군부·보수파 8일간의 쿠데타
8.20 에스토니아,완전독립선언
8.21 라트비아,독립선언
8.24 우크라이나 독립선언에 이어 러시아·카자흐공을 제외 한 모든 공화국이 독립표명.
11.14 12개공화국중 7개공,신조약안의 기본을 승인.
12.1 우크라이나공,국민투표에서 90% 독립찬성
12.8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시 등 3공화국,연방소멸과 독립국가 공동체 창설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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