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는 소설 아닌 「이야기」일뿐|김윤식씨 잇단 「이문열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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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문열씨의 장편 「황제를 위하여」는 소설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서울대교수)는 『문예중앙』 겨울호에 실린 평론 「가짜 역사의 미학」과 『문학사상』 12월호에 실린 좌담 「91년 소설의 현황과 새로운 징후」에서 소설과 이야기를 구분, 「최고 베스트셀러작가」 이문열씨의 작품에 대해 잇따라 비판을 가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씨에 따르면 소설은 시민적 삶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으로 시민사회의 윤리범주 또는 가치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시민사회와 관계없이 고대로부터 계속돼온 운명 극복적인 것이 아닌 운명 순응적인 그야말로 이야기라는 것이 김씨의 지적이다.
김씨는 시민사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때는 소설적인 것이, 반대의 경우에는 이야기적인 것이 우세하다고 전제, 90년대 들면서 대거 「이야기」가 문단에 나타나며 소설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개탄했다.
김씨는 현재 소설의 이름을 빌려 나타나는 것중 대부분이 가짜 역사에 관한 이야기라며 이씨의 「황제를 위하여」를 내세워 비판을 가했다.
김씨에 따르면 가짜 역사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자라지도 배우지도 못한 시민사회의 국외자라는것. 이런 국외자들이 자기 개인의 원한과 민족의 원한을 결부시켜 『정감록』같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만들며「황제를 위하여」같은 작품도 허황된 꿈을 그린 것으로 봤다.
최인훈씨의 「총독의 소리」, 토거일씨의 「역사속의 나그네」등도 가짜 역사지만 시민사회에 바탕을 둔 현실의식이 들어있어 소설로 볼 수 있으나 「황제를 위하여」는 한 인간이 사회에서 제구실을 못하니까 『정감록』을 읽고 빠지게 되는 허황된 꿈만을 그렸다는 것이 김씨의 지적이다.
이러한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독자를 사로잡았던 이유를 김씨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 그리고 「애비가 남로당이였다」는 개념을 이씨가 지니고 있었던데서 찾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이미 『정감록』에 다 들어있고, 자유·평등개념은 이미 보편화된 상식이기 때문에 「황제를 위하여」에는 이씨의 소설가로서의 독자성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씨의 작품이 통용될수 있었던 것은 「애비는 남로당이었다」가 통할수 있었던 80년대 어두운 시대상황 때문이었다는 것이 김씨의 지적이다. 때문에 「황제를 위하여」등 이씨의 작품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공중분해되어 버리고 소설로서 하나도 남지않게 된다는 것이 김씨의 결론이다.
이같은 김씨의 잇단 지적에 대해 이씨는 『기세 등등한 비평의 재단에 상할 작가의 가슴도 생각해보아야 진정한 비평가』라며 『학자가 너무 현장비평에 관여하면 보기에도 안좋으니 이제 상아탑으로 돌아가실 것을 고언한다』고 말했다.<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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