報恩의 투타 '최희섭·서재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 최희섭(左)과 송정 동초등학교의 박태범 감독.

"선생님, 이리로 앉으세요."

"그래, 추운데 고생이 많다. 오늘은 내가 한수 배워야겠다."

4일 경남 남해군 대한야구캠프. 아디다스 어린이 야구교실에 코치로 참가한 메이저리거 서재응(26.뉴욕 메츠)이 갑자기 일어나 누구에겐가 꾸벅 절을 했다. 스타 플레이어를 직접 보는 흥분에 참새처럼 조잘대던 초등학교 선수들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서재응의 인사를 받은 사람은 흐뭇한 얼굴로 서선수의 손을 맞잡았다.

서재응이 광주 화정초등학교에 다닐 때 야구를 배웠던 박태영(49)감독이었다. 박감독은 서선수의 후배들을 이끌고 이번 야구캠프에 참가 중이었다. 옆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다. 메이저리그 사상 첫 한국인 야수인 최희섭(24.플로리다 말린스)은 광주 송정 동초등학교 시절 은사인 박태범(42)감독을 만났다. 박감독은 "훌륭한 제자를 만나는 행복한 순간이다"고 말했다.

▶ 서재응(左)과 화정초등학교의 박태영 감독.

스승들은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로 커버린 두 제자를 대견해하면서도 이날만큼은 선진 야구를 배우겠다는 의욕에 불타는 '학생'으로 돌아갔다. 박태영 감독은 직접 캠코더를 들고 제자가 선보이는 투구 기본동작이며 훈련방법을 열심히 화면에 담았다. 박태범 감독은 타격자세까지 취하며 최선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스승들에게는 대스타의 까까머리 시절 추억이 가득했다.

박태영 감독은 "4학년이던 재응이가 한번은 6학년 선배에게 야단을 맞았는데 억울하다며 그 선배 집에까지 따라가 끝내 '잘못했다'는 사과를 받아냈다. 보스 기질이 강했고 배포도 컸다"고 말했다. 박태범 감독은 "희섭이는 동기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 별명이 '양키'였다. 그게 인연이었는지 결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며 웃었다.

제자들도 옛날 '호랑이 선생님'이었던 스승들께 고마움을 표했다. 서재응은 "꾸중할 때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봐주고 하신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희섭은 "항상 기본기를 강조해 지금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남해=김종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