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두께 5㎝」 소문까지/입법로비 봉투(정치와 돈:7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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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막판·선거자금 의식 임기말일수록 극성/주간연재
14대총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국회주변에서는 법안과 청원 등을 둘러싼 로비설이 무성하다.
선거자금이 궁한 의원들일수록 검은 돈의 유혹에 취약하게 마련이고 로비의 손길은 의원들의 약점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4년 임기가 끝날 무렵의 정기국회에는 각종 이권성 법안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게 국회의 관례처럼 돼 왔는데 이번에는 그도가 훨씬 심했다는 평이다.
국회주변에서는 당소속의원전체명의로 발의되는 법안이나 청원보다 여야의원들이 당론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발의하는 법안중 상당수가 이권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임기 초기에는 의원들도 몸조심하지만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4년동안 닦은 「경험」에다 막대한 선거비용 부담까지 안게되면서 삼키면 안되는 돈인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의원들이 늘어난다는게 오랫동안 국회에 몸담아온 사람들의 증언이다.
로비의 주체는 정부기관·국영기업체에서부터 재계와 각종협회,기업,이익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때로는 의원들이 중간다리를 놓아 로비를 성사시키기도 한다.
로비의 대상이 되는 상임위는 주로 의원들이 앞다투어 지원하는 건설·교체·보사·재무위 등에 집중된다는 것이 통설인데 실제로 이들 상임위에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로비의 냄새가 짙은 법안들을 많이 심의해 눈총을 받았다.
산하 협회가 많기로 유명한 보사위에서는 이번 국회에서 농어촌보건의료특별법개정안과 의료기사법개정안을 비롯,한약 약종상 명칭변경에 관한 청원 등을 다루면서 상당액의 뒷거래가 이뤄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보사위소속의 한 초선의원은 『이들의 청원과 관련,청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는데 봉투의 두께가 5㎝ 정도였다는 소문이 국회주변에서 나돌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이를 돌려 보냈으나 일부에서는 받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없지 않다.
우여곡절끝에 교체위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의 경우 자동차정비업체들로부터 로비를 받은 의원들이 심사를 보류하려다 말썽이 난 케이스.
2년마다 실시하는 차량정기점검제 폐지를 규정한 이법안이 통과될 경우 정비업체들은 점검비 3백60억원과 부속품교체비 등을 포함,연간 1천억원의 시장을 잃게 돼 있어 이들 업체들이 통과저지로비를 결사적으로 벌였다는 것이다.
야당측 간사인 정상용 의원은 말썽이 일자 당지도부를 찾아가 상당액의 봉투가 전달돼 왔지만 이를 돌려보냈다고 해명했다.
교체위는 여론의 비난을 받게되자 결국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통과를 반대하는 전국자동차정비사업자 일동 명의의 대형광고가 주요일간지에 실리기도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동차사업자의 조합가입을 의무화하고 정부에서 조합비를 조합 대신 징수해주는 내용의 자동차운수사업법개정안은 로비의혹이 짙다는 보도가 나가자 결국 심사가 유보됐다.
이 법안은 최기선 의원(민자)등 여야의원 20명에 의해 의원입법형태로 발의됐다. 최의원은 『지역구의 민원인 탓에 여야공동으로 발의한 것이고 법안에 찬반논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결코 뒷거래는 없었다』고 해명하면서 『발의자에는 민주당의 노승환·정대철 의원 등도 포함돼 있을 뿐 아니라 나는 교체위소속도 아니다』고 결백을 주장.
대형이권이 몰리기로 소문난 건설위에서는 수서사건이후 의원들이 몸을 사려 주택사업공제조합법안은 상정조차 기피해 공제조합추진자들이 의원들이 로비를 받아 법안심사를 하지 않는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파트등 집단거주지에 정수기설치를 금지하는 수도법개정안은 정수기판매업체의 로비를 받은 민자당의 S의원 등이 계속 반대했는데 민자당고문의 동생이 이업체를 경영한다는 소문까지 퍼지기도 했다.
이밖에 토지위장등기자에게 한시적으로 등기변경에 세제혜택을 주자는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은 종친회와 대토지소유자들의 로비를 받아 추진하려했으나 안됐고 중개요율을 협회자율에 맡기는 부동산중개사법개정안도 성안단계에서 내부적으로 문제가 제기돼 취소됐다.
법무사(사법서사)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모의원은 국정감사 등에서 토개공·주공 등의 부동산 등기절차를 법무사협회를 통해 해야한다고 주장,눈총을 받았으며 「원자력은 악마의 앞잡이인가」라는 번역서를 출간한 조모의원은 원전을 세우려는 한전측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소문이다.
최근 예산심의 과정에서는 정부에 특정물품을 납품할 업체에서 일부 예결위원들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면서 예산을 확보해줄 경우 거액의 정치자금도 약속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법안을 제안하는 것은 자유지만 상임위만 통과하면 본회의까지 무사통과라는면 현행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중간에서 거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음성적 뒷거래를 피하기 위해 로비행위를 양성화,등록단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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