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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혜정의 첫 시집 『비 속에도 나비가 오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한 해의 끝에 다가가면서 좋은 시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허혜정씨의 첫 시집 『비속에도 나비가 오나』를 읽다가 깜짝 놀라 자세를 바르게 하며 꼼꼼히 읽는다. 「우물」「글자」「다시 그려진 벽화」「문턱」「그 저녁의 기억」「슬픈 생각이 마른 벽에서」「일몰의 시간에」…「갈대」까지 적어도 시집의 1부에 실려 있는 열일곱편의 시들은 신선한 감동을 주는 아주 뛰어난 서정시들이다.
그녀의 언어들은 생경한 듯 하면서도 힘차게 하나의 선명한 그림을 돋을 새김해 낸다. 그녀는 무사들이 「바이칼호의 검은 빛에 물들며 말을 몰고」「귀리꽃 활짝 피던 곳, 뼈가 바수어지던 찬바람」이 불고 「무사의 여인들 부엌칼 손에 쥔 채 문간에 서있고 몽고반 새긴 아기들 파랗게 울어대고」「언 쥐 찢어가며 먹었던 저녁 생각나면 무사들의 검고 작은 머리 별처럼 떠오르다 사라지는 벌판」이 있는 「누추한 북간 마을」을 그리워한다(「다시 그려진 벽화」).
그것은 현재의 일상 속에는 부재 하는 벽화 속에, 즉 신화나 예술의 세계 속에나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원시의 힘들에 의해 움직이는 건강한 시원의 삶의 세계 모습이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위축되고 좀스러워져 버린 누추한 삶을 벗어버리고 잃어버린, 그리하여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싱싱한 시원의 여성성·모성성의 삶을 향하여 달려간다.
시인은 저 혼자 깊어져 있는 「우물」에서 두레박 깊이 가라앉혀 두고 떠난 사람들, 빈 집, 빈 마을, 온통 휑한 바람만 불고 있는 「비어 있는」세상을 본다(「우물」). 그래서 「어둑한 마당, 때로 손님이 와도/세상은 고루 쓸쓸했다」(「산청회례 2」)고 하는 것일까. 그녀의 시들은 현존 속에 들어앉아 있는 상실과 부재의 체험들을 잉잉거리지 않고 차갑고 투명하게 관조해내고 그것들을 언어의 투망질로 붙잡아 끌어 올려낸다.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시인의 천분이다.
일상성에 마모되고 훼손되어 버린 시원의 삶의 형상을 찾아가는 그녀의 언어의 자맥질은 일체의 잉여의 말들을 깎아내 버린 무서운 절제, 말의 강기, 적확함으로 빛나는 구문들로 힘차고 생기 있다.
「작은 돌산들이/붉은 이마를 해 속에서 빛낼 때/나는 트기 시작한 손을/호주머니에 꽂고 집으로 돌아왔다/수제비를 뜯던 할머니가 낮은 기침을 하고/내 작아진 옷은/뒷모습이 초라한 강냉이 장수에게 팔려 갔다/그 가윗소리가 슬픔으로 이어져/까만 쥐며느리와/거미가 실집을 짓는 것을 오래 쳐다보았다」(「추억」)나, 「언니가 길러 낸 머우 상치/이빨 누우렇게 마구 뜯을 때/병처럼 타들어가는/빨간 염통은 설움을 쑤어 먹고/해혈같은 꽃길을 언니 집에/토해 놓습니다」(「문둥이 노래조 2」)나, 「하루씩은 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우연히 죽은 벗의 부음을 받듯/추억은 김같이 널어 썰물 저녁에 남겨 둔다」(「섬 하나를 두어」)를 보라.
잃어버린 유년의 추억이든지, 육신을 조금씩 파먹어 들어가는 질병의 절망과 설움이든지, 끊이지 않는 상실의 체험들이든지(죽은 벗, 썰물 저녁은 시적 자아를 외롭게 남겨놓고 떠나간 것들의 이미지다) 그녀의 시는 그것들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적이미지들로 복원해낸다.
「새떼가 목청을 가르렁거리며 울었다」(「산청회례 2」)나 「구름의 흰 상자를 메고/당신의 묘를 찾았습니다/무릎 깊이 숙여 떼를 매었습니다/북가시나무 후박나무 춥게 서 있었습니다/……/세월을 휘감고 있는 듯한 바람 구석구석 싸늘해질 때/비로소 길이 어떤 것임을 알았습니다」(「선묘에 와서」)와 같은 구절을 읽을 때도 크게 울린다. 좋은 시들을 읽을 때 눈에 덮였던 비늘이 떨어지듯 삶은 새롭게 보인다. 장석주(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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