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무릎꿇은 민자당/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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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8일 밤부터 29일 새벽까지 김종호 민자·김정길 민주총무가 끌어낸 심야타협은 날치기 파행으로 얼룩진 13대국회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었다.
양측은 29일부터 국회를 즉각 정상화하고 추곡수매동의안등 날치기처리된 쟁점법안을 12월3일이후 처리키로 했으며 김 민자총무가 국회운영위원장으로서 『파행운영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스럽다』고 사과까지 했다.
몇몇 부분에 대해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날의 「국회법에 따른 원만한 합의운영정신」을 살려 나간다면 또다시 『아이들에게 TV를 보이기조차 민망한 상황』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사실 민자당이 지난 나흘간 보인 회의장 바꿔치기,야당 속여 넘기기,도둑고양이처럼 슬쩍 해치우기 같은 날치기 행패들은 13대는 물론 5공때도 보지 못했던 졸렬하고 국민을 우습게 아는 방자한 태도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었다. 법안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국민교육에 미칠 해악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민자당이 뒤늦게나마 여론을 귀담아 듣고 방향선회를 한 것은 그 자체로 평가해 주고싶다.
우선 지난 임시국회때 안기부법·경찰법 개정안 변칙통과때나 그 이전의 방송법 개정안 등의 기습처리때에는 일언반구 반성의 뜻을 표한적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점수를 더 얹어줄 수 있다.
집권당을 오만하게 만드는 거여구조나 임기말이 가까워옴에 따라 더 강력한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권력의 생리는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밑바닥 여론을 읽을줄 아는 지혜를 권고하고 싶다.
민주당이 통합 선명야당의 강야를 과시하기 보다 단계적인 압박전술을 구사,유연하게 정상화에 타협한 것도 야당의 새로운 면모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내무위에서 그들이 보여준 「폭력적 모습」은 여야 지지성향을 떠나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었다.
표결로 지더라도 절차를 밟아 찬반토론끝에 신사적으로 패배하는 야당을 보다 많은 국민이 원하고 있음을 알기 바란다. 이번 사태가 던져준 「절차존중」의 교훈을 양당이 계속 개발해 나가길 거듭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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