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추태는 지도력 빈곤탓”/여 날치기처리 진의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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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권정지·야차단 다목적 복선/YS계 “내부 견제용” 야 “정치자금 겨냥” 분석도
민자당이 정국 급랭을 무릅쓰고 쟁점법안들을 전격 날치기 처리한데 대해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여당의 변칙강행 배경과 진의를 놓고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추곡수매 동의안을 비롯,제주개발특별법안,바르게살기운동 조직육성법안,청소년기본법안(미처리) 등은 여야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데다 입장차도 워낙 뚜렷해 여당의 단독처리는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던 일이다.
지난 25일 여야 총무회담에서 쟁점법안 처리를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12월2일 이후로 유보한다는데 합의했던 민자당이 하루만에 태도를 돌변,쟁점법안과 민생법안 단독처리를 계속 강행하는 사실에 야당은 물론 여당의원들까지도 의아심과 함께 개탄해 마지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당의 이러한 대야 강경자세 급선회에는 나름의 정치적 복안과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인다.
여권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총선 등 주요정치일정에 대비한 정국관리차원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 여권 실세수뇌부가 ▲정치권에 대한 장악력 강화 ▲12월 정치일정에 대비한 사전정지작업 ▲통합야당세 제압 등 다목적용의 의도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대여전략에서 기인하고 있다.
제주개발특별법안,바르게살기운동조직육성법안 등 문제의 법안들을 예산안처리 이후로 미루게 함으로써 추곡수매와 예산안의 날치기처리에 이어 이들 법안 또한 여당이 변칙처리하는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야당의 무리수 유발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게 여권의 한 속셈이다.
어차피 정치불신과 양비론이 팽배한 국민정서를 감안할때 여당이 욕을 먹을거라면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며 욕을 먹는 시간도 가급적 단축시켜보겠다는 여당의 전통적인 구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여야정치권은 민자당의 입장선회가 집권마무리 정국관리의 한 흐름으로 보는 관측이 더 유력하다.
쟁점법안 강행통과는 12월초로 예상되고 있는 내각개편,12월10일의 남북고위급회담,12월 말을 전후한 공천작업 착수 등 12월 정치일정을 감안할때 주요 법안들을 12월2일 이전에 처리해 두는 것이 여러면에서 필요하다는 것은 여권 내부에서 줄곧 제기돼 왔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입장선회가 단순한 사전정지작업 차원을 떠나 집권말기를 맞고 있는 노태우 대통령의 권력누수현상을 최대한 방지하고 특히 총선공천·대권문제 등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는 당내사정을 감안,정치권을 바짝 죄어보려는 청와대측의 계산으로 보는 분석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YS계측은 청와대측이 국회를 강성으로 밀어붙여 모든 안건을 처리한뒤 그 비판의 책임을 김대표에게 전가하고 또 김대표에게 상처를 내게함으로써 YS계측의 총선전 차기후보 가시화 등의 분위기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뒤늦게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당을 책임진 김대표의 정치력 부재를 한껏 노출시켜 청와대와 민정계의 의도대로 정국을 밀고가려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야당측에선 또 다른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제주도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는 제주 개발특별법안이나 친여방계조직인 바르게살기운동 육성법안들을 굳이 강행처리하려는데는 또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야당측은 12월2일 이후 여당이 국회를 사실상 폐회하고 곧바로 총선국면으로의 전환은 물론 정치자금조성을 꾀하려는 의혹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주개발 특별법안은 제주도를 국제적 휴양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에 따른 금융·세제지원 등이 골자. 이 법이 적용될 제2차 종합개발지구의 땅 가운데 70%가 대기업등 외지인 소유여서 결국 제주개발에 따른 이익은 제주현지인보다는 재벌들에 돌아간다는 사실에 야당측은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현지의 거센 반발과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강행하려는 것은 정치자금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것이 야당측의 주장이다.
또 법적 지원근거가 없어 해마다 논란이 돼왔던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에 25억원의 국고와 지방자치단체의 별도 지원 및 관청사무실을 대여해 주려는 것 또한 11만6천명에 달하는 이 조직을 총선,대선 등에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것이 야당측 주장이다.
그러나 정치적 복선이야 어떻든간에 이런 사태를 연출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여야 모두의 지도력의 빈곤,정치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 때문이라는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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