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런 공론서슬…가위질 기승|"내용너무 어둡다"7곳 손질『어둠의 자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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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5공이전이나 이후나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에 의해 화면삭제·화면단축·대사삭제등의 가위질을 당한 영화의 90%가까이는 외설과 폭력이 그 이유였다.
포르노나 다름없는 정사장면의 연속, 무자비한 살상으로 스크린을 먹칠하는 그런 따위의 영화는 청소년의 보호육성은 물론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규제가 마땅하다.
한국영화를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시킨 큰 책임을 사회는 음란·저질물을 양산한 영화인들에게 물어야 한다.
반면에 영화가 사회로부터 온전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역사·사회의식에 바탕두고 현실사회 뒤안의 부조리와 갈등구조를 필름에 담아내려는 영화인들의 작업을 사회는 반드시 보호·장려해야한다.
그 전제는 물론 영화인들이 모든 소재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있다.
5공때는(지금보다 훨씬 가혹하게) 이러한 영화인들의 문제의식이 무참하게 가위질당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꺾여나간 시절이었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지난10월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주연여우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장길수 감독의 정리를 중심으로 본 5공하 한국영화의 수난사는 이렇다.
80년「서울의 봄」은 영화소재에도 반작 햇살을 비췄다. 도시밑바닥 젊은 인생들의 삶을 그린 『바람불어 좋은날』(이장호), 민중신학을 다룬 『사람의 아들』(유현목), 외딴섬의 압제자를 주민들이 무찌르는 『물보라』등이 무수정 통과된 것이다.
그러나 「5·17」이후 상황이 악화되자 심의도 급변해 『최후의 증인』(이두용)과 『짝코』는 심한 가위질을 당했고 이장호는 황석영의 소설『객지』의 영화화를 포기했다.
분단상황하 이데올로기에 희생돼가는 비극을 그린 『최후의 증인』과 『짝코』는 안보의식저해등의 이유로 대사가 삭제되거나 형사가 상부명령에 저항하는 장면등이 삭제됐다.
81년『도시로 간 처녀』(김수용)는 버스안내양인 여주인공이회사의 횡포에 항의,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장면이 선동적이라고 문제가 돼, 사망한 여주인공을 상처ㅎ만 입고 살아나는 것으로 재촬영해야했다.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에서 열네군데나 필름이 잘리는 아픔을 겪었던 이원세감독은 조세희의 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다시 도전했으나 네차례나 사전심의에 걸려 시나리오를 개작, 결국 원작속 공장노동자인 난장이 일가를 염전마을의 주민들로 바꿔야했다.
산업화와 도시빈민의 관계를 다루겠다는 기획은 실종되고 영화는 실패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원세는 85년 『여왕벌』을 만들었으나 반미적인 색채가 말썽이 돼 빛을 보지 못했고 좌절한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가위질이 유망주 감독 한명을 내쫓은 것이다.
81년 이장호는 사회물『그들은 태양을 쏘았다』와 『어둠의 자식들』을 연출했으나 『그들은…』14군데, 『어둠…』은 「카수 영애」라는 소설의 한부분만을 따 7군데의 가위질 끝에 개봉했었다.
82년은 『애마부인』(정인엽·심의에서 마가 마로 바뀌었는데 말대신 대마초를 즐기는 여인이 됐다) 등속의 에로물이 판쳐 문제작이 표류하는 시기였다.
이해 임권택은『안개마을』을 발표했는데 이 영화의 원제는 『익명의 섬』이었으나 제목이 수상하다하여 『안개…』로 바뀌었다.
83년 이장호는 『바보선언』과 『과부춤』을 발표했다.
『바보…』은 『어둠의 자식들2부』라는 제명이 바뀌어 블랙코미디로 만들어졌고, 『과부춤』역시 『오과부』라는 원제가 변경됐는데 빈민촌묘사가 계층간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5군데가 잘렸다.
84년 『비구니』파동은 신의보다는 5공 피해의식에 곁들인 비구니의 항의로 제작도중 중단됐고 그 때문에 『수녀 아가다』(김현명)은 그냥 『아가다』로 제목이 변경됐다. 또 『땡볕』(하명중)은 군중봉기 장면이 문제가 돼 잘렸다.
하명중은 이듬해인 85년 낙월도 주민들의 민중봉기를 그린 『태』가 또다시 문제되자 극심한 좌절 끝에 한동안 영화제작을 중단하기도 했다.
86년『허튼 소리』(김수용)파동은 급기야 공륜의 가혹한 검열에 불만이 가득했던 영화계와 공륜 이영희위원장간의 직접충돌사태까지 몰고왔다.
이에 앞서 김수용은 감독포기 선언을 했고 그해 7, 8월내내 공륜의 심의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었다.
10군데가 잘려나간 『허튼소리』는 결국 잘린채 개봉됐으나 결과는 흥행실패로 나타났다.
또『티켓』(임권택)의 경우는 원작 시나리오중 투옥당하는 시인이 사업가로 둔갑했으며 농촌의 잘못된 도시퇴폐화를 묘사한 18세소년의 매춘용 티킷구매장면은 한국에는 그런 소년이 없다는 이유로 삭제되는 등 12분이나 가위질 당하는 만신창이가 되고말았다.
이해『서울황제』(장선우)는 원제인 『서울 예수』가 김지하의 저항시에 바탕둔데다 기독교계의 반발을 우려, 제목을 바꾼 케이스고 『영웅연가』(김유진)도 『영웅만들기』라는 원제가 아리송하다하여 고쳐진 경우다.
『영웅연가』는 도박군과 호스티스가 대기업의 선전을 위해 모범인간으로 개조돼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려했으나 결국 애정영화로 둔갑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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