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성과에 기운 아태총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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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웃는 얼굴과 악수하는 손은 따뜻하지만 속마음은 냉혹하게 차가운 것이 외교무대다. 14일 끝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 각료회의(APEC)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국익경쟁에서는 영원한 적도,우방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특히 서울에서 이 회담이 열렸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런 국익을 우선시킨 냉혹함이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부각됐다. 이번 APEC총회에서 채택된 선언들은 단순히 우리만의 경제적 이익이라는 한가지 측면에서 본다면 실망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농산물 개방문제를 둘러싼 압력도 그랬고 총회의 본래 목적인 지역경제 협력보다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성공적 타결을 마무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은 회담분위기도 그랬다. 그런 점들을 제외하면 이번 회담은 몇가지 면에서 평가할만한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APEC의 장래와 관련해 상설기구화할 수 있는 정지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우선 그런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동안 가닥을 잡지 못했던 APEC의 진로와 목적을 비롯,운영방안 등에 관해 검토함으로써 이 기구를 활성화하게 될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유럽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시장의 통합이나 북미 자유지역의 설치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경제가 블록화되어가는 추세에서 15개국이나 되는 다양한 국가들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의견을 집약하게 된 것은 작은 성과가 아니다.
또 하나 평가할 수 있는 점은 APEC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됨으로써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우리의 외교 및 안보측면에서의 성과들이다. 미국·일본·중국 등 한반도의 안정에 직접·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들의 외무장관들과 의견을 나누고 몇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본다.
우선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이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양국관계의 발전에 계기를 마련한 점이 두드러지는 점이다. 아울러 점증하고 있는 한중 양국의 무역관계에서 우리에게 차별관세를 적용해온 불공평한 관행을 개선하기로 합의한 점도 눈에 띄는 진전이다.
또 베이커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그가 거론했던 소위 「2+4」구상에 대한 진의를 타진하고 해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외상이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모든 핵시설」의 포기를 수교조건으로 거듭 확인했던 점도 종래 모호했던 것에 비해 좀더 강화된 태도로 평가된다.
이번 APEC총회의 결과는 이같은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우리외교의 방향을 설정하는 지표로 삼아야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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