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 10일 만에 특검 재의 표결…거부권이 '거부' 당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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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사건 특검법안'이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再議)에 부쳐진다. 이로써 국회는 파행 10일 만에 일단 정상 가동되게 됐다. 한나라당 홍사덕.민주당 정균환.자민련 김학원 원내총무는 3일 특검법안을 4일 본회의에서 의원 무기명 투표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표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특검법안이 가결되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한나라당 의석은 1백49, 민주당은 60, 자민련은 10석이다. 야3당의 의석(2백19석)이 국회 전체 의석(2백72석)의 3분의 2(1백82석)를 훨씬 넘는다.

공조를 다져온 야3당은 "무난히 재의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나라당 정의화 수석부총무는 "지난달 10일 특검법안이 가결됐을 땐 1백84표의 찬성표가 나왔지만 이번엔 2백여표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盧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당초 특검을 반대했던 민주당 내 일부 의원이 재의결 쪽으로 입장을 바꿨고, 자민련도 이번엔 당론으로 찬성 입장을 정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민주당에선 "재의결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재의결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데다 특검법안을 반대했던 추미애 의원 등이 당론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 표결 참여자가 지난번(1백42명)보다 늘어나는 것도 가결 가능성을 크게 하는 요인이다.

이번 표결엔 의원직 사퇴서를 낸 강삼재 의원과 당론과는 늘 반대로 가는 김홍신 의원 2명을 제외한 1백47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한나라당 측은 밝혔다. 단식 투쟁 중인 최병렬 대표가 휠체어를 타고 표결하는 모습도 동정표를 얻을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기대다.

특검법안이 가결될 경우 국회는 1961년 4월 윤보선 당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부정축재특별처리법안을 재의결한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특검법안 가결은 盧대통령에겐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의 착수를 의미하므로 큰 타격이 될 게 틀림없다. 최장 3개월 동안 진행될 특검 수사는 내년 4월 총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무기명 투표인 만큼 기표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3일 온종일 야3당 의원들을 상대로 표 단속을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법안이 부결될 경우 정국엔 파란이 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공작정치 탓"이라며 다시 전면투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洪총무는 "표결에서 국회와 대통령의 관계를 완전히 훼손시키는 결과가 나올 경우 그런 국회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법안이 부결되면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해 국회를 사실상 해산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이상일 기자<leesi@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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