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애플 유럽서 욕먹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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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고객 손발 묶는 아이튠스의 시장 지배에 잇단 제동

매킨토시 컴퓨터와 아이팟을 만든 애플은 언제나 마이크로소프트와 자신들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 회사 광고에서는 최신 유행을 따르는 맥이라는 멋쟁이가 나와 창백하고 땅딸막한 패배자 PC에게 망신을 준다. 회사 슬로건은 소비자들에게 생각을 바꾸라(Think Different)고 촉구한다.

그러나 애플은 악전고투하던 컴퓨터 메이커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거인으로 진화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유물이던 역할을 떠맡았다. 유럽의 악당기업이 됐기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튠스 온라인 음반 상점은 2004년 중반 유럽에 발을 내디디면서 하루아침에 성공했다. 고객들이 첫 주에 80만 곡을 내려받았다. 아이튠스는 이내 연예오락 다운로드 시장의 무려 70%를 장악했다.

고객이 쉽고 저렴한 값에 합법적으로 웹에서 본인 아이팟으로 MP3 파일을 내려받게 함으로써 애플은 불법행위를 생존 가능한 사업으로, 독점하고픈 사업으로 변모시켰다.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운영체제를 공개하느니 차라리 패자가 되는 길을 택했었다. 이제는 아이튠스의 고삐를 풀라는 압력에 맞서 싸운다.

지난해 여름 유럽이 애플을 밉게 보기 시작한 첫 조짐이 나타났다. 노르웨이의 소비자보호기관이 아이튠스가 국내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이 아이튠스에 디지털 권리 관리(DRM) 소프트웨어를 포함했다는 사실이 불만의 초점이었다.

그것은 아이튠스로 내려받은 파일을 이동전화처럼 애플과 무관한 장비로는 듣지 못하게 막는 프로그램이다. DRM은 또 야후나 냅스터 등 다른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노래는 아이팟으로 듣지 못하게 막는다. 간단히 말해 “고객 친화”를 기치로 내건 애플이 고객들의 손을 묶었다.

노르웨이의 소비자 보호단체들 말고도 많은 단체가 불만을 터뜨렸다. 연말께는 핀란드·프랑스·스웨덴·덴마크·독일 관련 당국이 DRM 소프트웨어의 공정성 여부 심사에 들어갔다.

올 1월 27일 네덜란드는 한술 더 떠 애플이 “불법” DRM을 폐기할 마감 시한을 9월로 정했다. 노르웨이가 정한 유사한 마감 시한을 한 달 앞당긴 조치였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라고? 그렇다. 유럽과 미국 법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에 미디어플레이어와 웹브라우저를 끼워 팔아 독점금지법을 어기고 경쟁 제품을 차단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미국보다 독점 타파 세력이 더 적극적인 유럽에서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분리 판매를 실시했다. 이제 유럽은 애플이 다른 기업의 제품과 병용 가능한 제품을 만들라고 강요한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갑자기 살벌해졌을까? 일부 해답은 규모에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수입이 96억 달러에 이르면서 애플은 거인이 됐다.

유럽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70%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문 전문사 웨스트홀캐피털(런던)의 기술담당 분석가 키스 울콕의 말마따나 “성공의 벌(罰)이다. 거대기업이 되는 순간 노동 기준에서 소비자 권리에 이르는 온갖 문제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애플은 와해성 기술 기업이기도 하다. 애플 때문에 이미 대형 음반기업들의 경영 방식이 확 바뀌었다. 웹·텔레비전·음악·영화·전화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면서 지금까지는 애플이 변화 물결의 꼭대기에 성공적으로 올라 앉았다.

프랑스의 비방디, 핀란드의 노키아, 독일의 베르텔스만처럼 아무 관련도 없는 회사들이 그 파도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 이 회사들이 있는 나라의 당국이 아이튠스 규탄 대열에 동참한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정치인이 개입하는 순간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된다”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가트너 리서치의 분석가 마이크 머과이어는 냉담하게 말했다. “사실 이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 더 유럽의 정치적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주피터/케이건 리서치(런던)의 마크 멀리간은 덧붙였다.

다양한 사례가 결국 법원으로 가게 되면 애플은 강력한 변호를 펴게 된다. 따지고 보면 DRM은 대형 음반사들이 웹에서 음악을 파는 권리의 대가로 애플에 강요했으며, 그중 세 개가 유럽 회사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그런 모순을 간과하지 않았다. 2월 초 회사 사이트에 올린 소비자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그 점을 지적했다.

애플 이용자들의 대화방과 블로그에서 압도적으로 표명된 반DRM 소비자 정서와 연대하려는 현명한 작전이었다. DRM을 비난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애플의 책임을 전가하기는 했어도 애플은 그것을 아직 폐기하지 않았다.

설령 자기 회사가 잘못된 행동으로 덕을 볼지라도 잡스가 악당이라는 인상을 벗으려 노력한다는 점만 보여줬을 뿐이다.

애플은 분명 덕을 봤다. 지난해 유럽 매출액이 33% 늘었다. 그러나 신기술에 환호하는 열성팬 기반이 식어가는 조짐이 있다. 인터넷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8%가 DRM 폐기에 찬성했다.

‘디펙티브바이디자인’ 같은 디지털 권리 압력단체는 런던의 애플 매장들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국회의원과 보노(가수이자 운동가) 등 모든 사람에게 호환 가능한 소프트웨어 기준 제정 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식의 여론에 앞서가려는 생각은 참 현명하다. 결국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르다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할지 모른다.

쉼없이 소송에 휘말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워낙 비난을 많이 받는 바람에 욕설이 난무하는 만화영화 ‘사우스 파크(South Park)’는 관객의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만화로 그려진 빌 게이츠가 머리에 총을 맞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환호했다.

현재로는 미디어 생리에 밝은 잡스가 그런 운명에 처하리라 보이진 않는다. 충성심 강한 거대한 소비자층을 겨냥한 잡스의 조심스러운 구애는 마침 애플이 큰 기대를 거는 이동전화 사업 진출과 때가 겹쳤다.

이동전화는 노키아·필립스·에릭손 같은 유럽 기업들이 지배했으며, 유럽연합(EU)이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는 분야다. 애플은 올 여름 최신 와해성 기술인 아이폰(iPhone)을 선보일 예정이다. 잡스는 유럽의 규제당국과 소비자들이 다같이 “생각을 바꾸기”를 바란다는 얘기다.

JOHN SPARK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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