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무장한 '이공계 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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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서울중앙지법에 배치된 김혜란(31.여) 예비판사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출신이다. 대학시절 한 선배에게서 "특허를 둘러싼 법률 분쟁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법률가의 길을 택했다. 김 예비판사는 "법 지식을 겸비하면 나만의 분야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공계 출신의 법조계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2000년 20여 명에 불과했던 이공계 출신 연수원생은 올해 50명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물론 대부분이 법학 전공자인 연수원의 특성상 전체(971명)에서 차지하는 비율(6%)은 크지 않다. 하지만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법조인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의미 있고 뚜렷한 증가세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두각=서울중앙지법의 경우 지적재산권과 의료전담부에 이공계 출신 판사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장현진(32.여) 판사는 지적재산권 전담재판부인 민사합의12부에서 일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전담부인 민사합의 11부의 박상준(34) 예비판사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나왔고, 같은 부의 박상언(30).윤나리(29.여) 판사도 각각 서울과학고와 부산과학고를 졸업했다.

지적재산권 단독부의 양은상(35) 판사도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나왔다. 고려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노태홍(39) 판사, 연세대 생화학과 출신의 양희진(32.여) 예비판사,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나온 정윤섭(30) 예비판사도 이공계 출신이다.

◆특허 출원한 판사도=국내 첫 '담배소송'의 주심을 맡았던 이춘수(37.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전 판사는 전공을 살려 쌀의 도정 정도를 조절하는 기계를 발명해 특허까지 출원했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시는 아버지를 돕다 발명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초 연수원 수료 성적 2등으로 법무부장관상을 받은 박병권(27) 군법무관은 대전과학고를 나왔다. 8등으로 연수원장상을 받은 장환석(26) 군법무관은 대구과학고 출신이다. 서울중앙지법 의료전담부의 문현호(의사) 판사와 민사합의51부 하태헌(치과의사) 판사, 또 다른 의료전담부의 오연수(약사) 판사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중앙지법 최기영 공보담당 판사는 "이공계 출신들은 과학.기술지식이 필요한 법률 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판결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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