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만나는 전·현 미 대통령들/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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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5명이 4일 미 캘리포니아주의 시미밸리라는 작은 마을에 함께 모였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 준공식에 참석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을 위시하여 닉슨·포드·카터·레이건 전 대통령이 나란히 단상에 앉아 기념식을 지켜 보았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닉슨 전 대통령부터 역임순으로 도서관 건립에 대한 짤막한 축하인사가 진행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시절 이루어 놓은 치적을 치하하면서 부시 현 대통령의 지도력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레이건 대통령에게 패배하여 백악관을 떠난 카터 대통령도 5명가운데 유일하게 자신만이 민주당 출신임을 들어 『민주당 대통령은 볼 수가 없다』는 농담을 하면서도 과거 정적인 레이건 대통령의 업적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부시 대통령은 전임대통령들의 업적을 하나하나 이름을 들어가며 칭송하고 소련의 변화와 공산주의의 몰락은 이미 레이건 대통령이 예견했던 것으로 냉전종식의 주역은 자기가 아니라 레이건 대통령이라고 공을 전임자에게 돌렸다.
생존한 전직대통령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아 이번 행사를 이례적인 일로 언론들도 보도하고 있다.
일단 현직에서 물러나면 모두 조용히 저술활동이나 사회봉사 활동으로 여생을 보낸다.
정치활동이라는 것은 현직대통령이 국가원로 예우로 자문을 요구할때 응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언론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들의 활동을 뉴스거리로 삼지 않는다.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자주 입에 오르는 우리의 상황과 비교할때 참으로 부러운 장면이었다.
서운한 감정이 풀리지 않아 현직 대통령이 초청한 자리에 응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그간 당한 냉대를 보상키 위해 이미 물러난 대통령 주변에 과거의 유력자들이 모인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언론은 언론대로 전·현직대통령간의 인간적인 갈등을 공적인 차원으로 확대하여 정치적인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현실정치에 초연한 존경받는 원로전직대통령을 갖게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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