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12배 크기 호수 3년 만에 사막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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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이 몰려와 행패를 부릴 땐 호수 주변 갈대밭에 주민들이 몸을 숨겼답니다. 내가 젊었을 때도 이렇게 식물들이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자랐어요. 하지만 이젠…."

지난달 28일 몽골 남부의 오문고비도(道)에 있는 울란 호수에서 마을 이장 바후트(70)는 색깔을 입힌 오래된 흑백사진을 황사 발원지 취재팀에게 내놓았다.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축척 220만 분의 1의 몽골 지도에도 울란 호수는 푸르게 표시돼 있지만 2000년에 이미 사라졌다. 호수에 물이 가득했을 때는 길이 25㎞와 폭 15㎞의 큰 호수였다. 지금은 초콜릿 색깔의 점토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어 이곳이 호수였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황사 발원지 탐사 취재팀 차량이 황량한 고비사막의 모래 먼지 속을 달리고 있다. 올 겨울 고비사막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이상 고온이 계속돼 예년에 비해 황사가 훨씬 심하고 자주 발생할 것으로 몽골 기상청은 예상하고 있다.


1964년부터 이장으로 일했다는 바후트는 "과거에도 호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97년 한 번 가득 찬 게 끝이었다"며 "강물이 마른 뒤 마을 주민도 500명에서 400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는 몽골의 사막화는 주민 생활을 바꾸고 있었다.

◆먼지로 사라지는 황토 언덕=울란 호수 남동쪽 바얀자그 지역에서는 건조화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인 삭사울(자그)이 많다는 뜻의 지명과는 달랐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삭막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40~50m 높이로 거대한 붉은 황토 언덕만이 불쑥 솟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본 거대한 황토 언덕은 처참했다. 물과 바람에 침식되고 무너져 내리면서 수십m 높이의 깎아지른 벼랑이 생겨났다.

몽골 지리생태연구소의 카울란벡 박사는 "과거 ㎡당 3~4그루의 삭사울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젠 ㎡당 한 그루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황토 언덕을 붙잡아 주던 삭사울 나무가 사라지면서 80년대 말부터 침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조그만 황토 언덕은 아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벼랑 아래에 흙더미가 무너져 내려 쌓여 있을만도 한데, 흙더미는 눈에 띄지 않았다. 카울란벡 박사는 "황토가 바람에 침식돼 곧바로 황사가 돼 공중으로 날아올라 멀리 한반도까지 이동한다"고 말했다.

울란바토르 외곽의 초원에서 눈에 파묻힌 풀을 찾아 뜯고 있는 양과 염소를 말탄 유목민이 지켜보고 있다. 올 겨울 들어 모처럼 내린 눈이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정착지와 샘물 주변의 초지는 과도한 방목으로 황폐해졌다.


◆움직이는 모래 언덕=몽골 남부 도시 달란자르가드에서 북서쪽으로 100㎞ 떨어져 있는 멀츠크엘스. 수십~수백m 길이의 황토색 모래 언덕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황량한 곳이다. 취재팀이 이곳을 찾았을 때 길게 누운 모래 언덕마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물결 무늬가 선명했다.

카울란벡 박사는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이들 모래 언덕 자체가 남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작은 모래 언덕을 파헤치자 지난가을에 내린 눈이 발견됐다. 서너 달 사이에 5~10㎝의 모래가 덮은 셈이다.

동행한 시민정보미디어센터 오기출 사무총장은 "모래 언덕 가운데 어떤 것은 매년 200~300m씩 이동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황사로 흩어져 1년 만에 사라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물이 완전히 말라 버린 몽골 남부 바얀홍고르 지역 어르그 호수의 모습. 염분과 진흙이 엉겨 붙은 호수 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바람에 날린 소금기와 흙먼지는 인근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주민 생계까지 위협=우브르항가이도의 보그드군(郡) 소재지에서는 마을 골목 한쪽에만 모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 지역 바트울지(56) 시민위원장은 "남쪽으로 모래가 이동해 쌓인다"며 "1년에 한 번쯤 모래를 치우는데, 어떤 때는 나무 울타리 높이와 같은 1.5m까지 모래가 쌓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 환경국장인 바야스갈랑(43)은 "황사 발생 일수가 최근 3년간 평균 87일로 늘어났고 황사가 10일간 지속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 봄은 더 문제다. 잉흐둡싱 몽골 기상청장은 "겨울에 눈이 적게 왔고 앞으로도 강수량이 적은 시기가 계속돼 올해는 황사가 많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이 몽골 주민들은 이미 시작된 환경 재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 채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유목민 전통 가옥인 게르에서 만난 어융수릉(여.30)은 "황사가 계속되면 가축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게 되고, 길 잃은 가축을 찾아나섰던 사람이 오히려 생명을 잃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읍내 친척에게 맡겨놓고 옮겨다녀야 하는 고단한 삶 때문인지 실제 나이(30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울란바토르 글=강찬수<envirepo@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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