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의 심리적 분석/조두영(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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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 달에는 여아 성폭행사건들이 유난히 신문지면을 장식했었다. 서커스단 소녀와 어느 백화점주인 양녀를 위시해 하루 걸러 오르지않은때가 거의 없었다. 성폭행은 남자아이도 당하지만 드러난 것은 대개 여자아이쪽이 월등히 많기때문에 여성계쪽에서 특히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에서 「어린이 성폭행」이라는 다소 과도포장된 용어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반면 전문가들이 국제공통으로 쓰는 정의는 「15세이하의 어린이를 상대로 그보다 5세이상 나이먹은 사람이 주도해 성적 흥분을 맛보려고 서로의 육체 일부 또는 전부를 고의적으로 접촉시키는 행위」다.
○20년전부터 관심
여기에는 피부접촉·애무·입맞춤도 포함되며,실제 그런 행위가 성폭행의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우리 재래식 표현으로 「어린이 육체농락」이 좀 더 정확한 것이 되겠다.
어린이 성폭행문제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년전부터인데,주로 구미에서 중증정신과환자·성범죄자·화류계여성들의 신상진술에서 이런 경험담이 자주 튀어나왔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경악한 전문가들은 설문조사·전화조사를 시작했고,그 결과는 3∼4년마다 앞의 것을 뒤집는 높은 빈도를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80년대 후반 보통주민 5백가구를 집중조사한 미국통계는 16세 이상의 성인가운데 여자 15%,남자 9%가 과거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했고,그중 절반은 9세이전에 그랬다 하더라는 것이다. 이는 최근 교과서에 실린 것인데,가해자의 반은 30,40대 친척 성인남자로,특히 생부·계부·의부가 많았다. 이는 성개방과 더불어 약물남용과 이혼이 많은 미국사정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1회 증언일뿐 워낙 어려서였던지라 착각·오해·기억착오·환상이 작용해 나온 「잘못시인」이 많이 끼여있을 것으로 보는 정신과 의사들이 많다.
한국통계는 아직 없고,단지 하나 80년대 10년간 언론에 보도된 37건을 분석한 것이 있다. 이를 보면 피해자는 모두 여아로 국민학교 3년생이 그중 많았으며,가해자는 60%가 면식범으로 한동네사는 무직의 20대 남자가 대부분이었고,그 4분의 1이 살인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
실제로 어린이 육체농락은 집안에서,그리고 어둠속에서 일어나며,폭력행사없이 장난처럼 시작해 달래고 어르고 으름장을 놓는 중간과정을 거치는 것이 통례인데 한국에서는 빙산일각격인 폭력구사를 동반한 심한 성행위의 것만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판이다. 그래서 「성폭행」이란 용어가 일반에 더 잘 먹혀들어간다.
가볍게 한두차례 겪었다면야 그런대로 별탈없이 넘어가겠지만 그 정도를 넘어선 육체농락은 어린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우선 그 직후 정신적 충격에서 무서움·불면증·악몽·두통·복통같은 불안증상을 겪으며,심하면 남자 모두를 피한다.
또 심리퇴행이 일어나 야뇨증·손가락빨기·칭얼대기같은 짓을 다시 한다. 10대 소녀라면 가출하거나 우울증에 빠지는 수가 많다.
장기적으로 오는 후유증은 갖가지인데 성인불신감·수치심·죄책감·자격지심에다 학업부실·자살기도가 따른다. 장성해서는 색을 탐하거나 아주 외면하는 양극단의 길을,아니면 동성연애의 길을 걷기도 한다.
되갚는 식으로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는 소아기호증환자로도 되며,심하면 정신분열증·성격이상자·폐인에까지 이른다.
육체농락을 매맞으며 당한 경우,1년이상 당한 경우,타인앞에서 공개적으로 당한 경우,그리고 당한뒤 주위 어른들에게서 몹시 야단맞은 경우 일수록 후유증은 더 심하다.
그렇다면 여아육체농락의 근본원인 또는 근래 증가추세에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략 다음 네가지를 든다. 첫째,어린이라 하더라도 만1세가 되면 자동적으로 성감에 눈을 뜬다는 사실이다.
성인과 거의 다름없이 성적 흥분을 즐긴다는 사실이 최근 10년간 구미유수의 아동발달연구소 연구결과로 입증되었는데,실은 나도 작년 어느 전문국제학회에서 필름을 보고 망연자실했던 적이 있다. 이렇게 성감은 알면서 성에 대한 개념은 서있지 못한 처지라 어린이는 처음에 가해자가 자기를 귀여워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둘째,어린이들이 매력적으로 되어 간다는 점이다. 발육이 빨라졌고,부모들은 적게 낳아 건강하고 귀엽게 키우고 예쁘게 치장시키고 게다가 일찍부터 여성답도록 교육시키기 때문에 이들은 본의아니게 가해자를 끌어들인다. 또 텔리비전을 통해 남녀 관계를 어설프지만 쉽게 배운다는 점이다.
○네가지의 증가원인
셋째,여권신장에 반비례하는 남성상의 왜소화 때문이다. 교양과 경제력을 갖춘 당당한 엄마,초·중등학교의 무서운 여자선생님들,민주가정의 현대판 영웅이지만 과거기준으로 보면 공처가가 분명한 아버지를 가지고 장성한 아들의 일부는 자칫 빗나가면 자기 또래의 성인여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낙찰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다른 원인까지 겹쳐 사회에서 소외당하다 보면 이런 성인남자는 성애의 대상을 나약한 여아에게서 찾으려든다.
넷째,모두 바쁜 부모들이 몸만은 말같은 여자아이를 집안·동네에 혼자 있게해 정에 굶주린 이 아이가 가해자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는 데에도 있다.
이렇게 볼때 한국사회도 당분간은 계속해서 어린이 농락이 늘어나고 심각해지리라는 판단이 선다.<서울대 의대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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