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출판사 번역물 과당경쟁|외국작가 인세 상승 부추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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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외국 인기작가의 인세가 국내 인기작가의 수준에 육박하는 데다 상승세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르다.
선인세가 작년 1천달러 선에서 최근 2천∼3천달러 선으로 올랐고, 인세는 4∼5% 고정률에서 누진율을 적용, 최고 10%까지 뛰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속편의 선인세는 단번에 10배 이상 오른 6만달러.
국내 출판사들과 에이전시간의 과당경쟁이 한국 출판시장을 「세계의 봉」으로 만든 셈이다.
높은 인세를 받는 외국작가는 시드니 셀던, 주디스 크란츠, 토머스 해리스 등 미국 「네스빗 앤드 장클라우」에이전시에 소속돼 있는 일군의 작가들과 『러브스토리』『닥터스』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해진 에릭 시걸 등이다.
이들은 동양권 독자의 정서에 맞는 주제와 유려한 문체, 재미있는 구성 등으로 10만명 정도의 고정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선인세 2천∼3천달러에 5천부까지 6%, 1만부까지 7%, l만부 이상 팔리는 부수에 대해 8%를 받는 통상적인 「6-7-8제」대신 「6-8-10제」를 적용하고 선인세도 3천∼5천달러를 받는다.
에릭 시걸은 『닥터스』(김영사간)의 인세로 작년 한해동안만 1억여원을 가져갔으며 금년에도 l0월 현재 판매부수가 작년 전체 판매량을 웃돌아 2년새 3억원 가까운 인세를 받게 됐다.
88년 『시간의 모래밭』, 90년 『깊은 밤의 추억』, 91년 『최후 심판의 음모』를 선보인 시드니 셀던도 금년 말까지 1억5천만원의 인세를 챙겨갈 전망이다.
한편 지난 4년반 동안 2백만부가 팔려 한국 출판사상 최대기록을 세웠다는 『태백산맥』의 인세가 7억5천만원, 발매 이후 1년반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온 『소설 동의보감』은 4억5천만원이다.
판매기간과 『태백산맥』이 전10권, 『소설 동의보감』이 전3권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외 정상급 인기작가의 인세는 큰 차이가 없어졌다.
국내 작가의 창작물과 번역 작품의 인세 수준이 맞먹는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이다.
외국 작가의 가파른 인세상승의 대표적 사례는 『종이시계』의 저자 앤 타일러.
퓰리처상을 받기 전 l천달러 선인세에 인세 5%로 계약했으나 10만부 이상 팔리는 호조를 보이자 최근 선인세 4천달러에 인세 6%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네이딘 고디머의 최신 장편소설 『내 아들의 이야기』를 수상 4개월전인 지난 6월 선인세 1천5백달러에 인세 6%로 계약한 성현출판사의 경우는 출판사끼려 경쟁하지 않을 때의 적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출판사들의 과당경쟁양상은 한심할 정도.
최근 동아출판사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세계를 변화시긴 60초』를 선인세 l천5백∼2천달러에 상담 중 J출판사가 책 내용도 검토하지 않은 채 끼어들어 몇 배의 선인세를 부른 뒤 포기하고 영국의 에지전시측은 J출판사가 제시한 선인세를 무리하게 고집하는 바람에 계약이 어렵게 됐다.
출판계에서는 수준 높은 국내 창작물이 많이 나오지 않고 출판사와 에이전시들의 과당경쟁이 자제되지 않는 한 외국 번역물의 인세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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