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는 한국 기업들=한국 공장 밀집지역인 칭다오(靑島)에선 생산 시설을 버리고 철수하는 한국 기업들도 늘고 있다. S피혁은 지난해 말 한국인 사장과 임직원들이 금융기관 빚 3억 위안(약 360억원)을 갚지 않은 채 도피했고, J완구도 올해 설 직후 빚을 남긴 채 공장 문을 닫고 사라졌다. 이런 현상이 생기자 중국 당국이 다른 한국 기업까지 감시하기 시작했다. 샤먼(廈門)에선 현지 금융기관들이 한국 기업에 대한 대출을 거둬들이고 있다. 여기 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VK가 지난해 7월 은행 빚 6억 위안 등 10억 위안(약 1200억원)가량을 갚지 못하고 부도를 낸 뒤 나온 조치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 중소기업들 중 공장을 제3국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겪었던 가파른 인건비 상승과 노동력 부족 현상이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에 시달린다=둥관(東莞)의 삼화완구는 '춘절(春節.설) 연휴에 고향에 갔다 공장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70위안(약 8500원)을 주고, 고향 친구를 직원으로 데려오면 100위안(1만2000원)을 준다'는 조건을 걸고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다. 그러나 연휴가 끝난 뒤 돌아오지 않는 생산직 근로자가 많았다. 고향에서 "어디가 월급이 많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바로 그 회사로 옮기는 근로자가 늘고 있는 까닭이다.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중국에 공장을 세우면서 일자리가 넘치자 이런 현상이 생기고 있다. 춘절 연휴가 끝나면 생산직 사원이 20% 정도 줄어든다는 게 현지 한국 제조업체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인건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베이징의 근로자 임금 상승률은 거의 매년 15%를 넘었다. 무역협회가 지난해 말 중국에 진출한 180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2006년 2년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이 10%를 넘는 곳이 전체의 59%였다. 게다가 중국 근로자들에게는 임금뿐 아니라 양로보험.의료보험 등 급여의 60%에 이르는 각종 사회보장 비용을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 상하이 이마트 정민호 대표는 "고참 과장급 현지인 연봉이 5000만원 정도"라며 "상하이에서 전 세계 78개 유통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 이 정도를 주지 않으면 인재를 데려올 수 없다"고 말했다.
◆법과 세금으로 외국 기업 옥죄는 중국 정부=중국 정부는 3월 중 노동자의 합법적인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계약법'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는 한 기업과 노동자는 무기한 계약한 것으로 간주하고, 노동계약은 노동자 의견을 기준으로 한다고 규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인건비가 추가로 오르고 한국 투자기업의 경영여건이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중국은 증치세 환급 축소 등 세금정책을 통해 가공무역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급증하면서 미국.유럽연합(EU) 등과 통상마찰이 늘어나자 그 주범으로 가공무역을 지목하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기술이전 효과가 낮은 저부가가치 가공무역 수출을 줄이고, 기술이전 계획을 내놓을 것을 강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중앙일보=양선희(팀장).권혁주 기자(경제부문)
한국무역협회=송창의 중국팀장, 이승신 무역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