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임금 … 싼 맛에 갔다가 사람 못 구해 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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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취재진이 방문했던 상하이(上海) 인근 쿤산(昆山)시에 있는 한국 화섬업체 대유 공장.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그을린 자국까지 있었다. 2004년 3월 일어난 화재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1994년부터 화학섬유와 양말을 만들어 한국 등에 수출하던 이 공장은 화재로 양말 생산 시설이 모두 불탔다. 그러나 생산 라인을 복구하지 않았다. 인건비 등이 치솟아 수익성이 악화돼 어차피 접으려던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전부터 주력 생산 시설을 방글라데시로 옮기고 있었다. 쿤산 공장은 올해 이익을 낼지도 불확실하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까지 수출을 하면 원자재를 살 때 냈던 증치세(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 17%를 전부 돌려줬으나 올해부터는 11%만 환급하는 등 세금 혜택을 대폭 줄였다. 공장 책임자인 대유 채병수 상무는 "하루라도 빨리 공장을 접고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짐 싸는 한국 기업들=한국 공장 밀집지역인 칭다오(靑島)에선 생산 시설을 버리고 철수하는 한국 기업들도 늘고 있다. S피혁은 지난해 말 한국인 사장과 임직원들이 금융기관 빚 3억 위안(약 360억원)을 갚지 않은 채 도피했고, J완구도 올해 설 직후 빚을 남긴 채 공장 문을 닫고 사라졌다. 이런 현상이 생기자 중국 당국이 다른 한국 기업까지 감시하기 시작했다. 샤먼(廈門)에선 현지 금융기관들이 한국 기업에 대한 대출을 거둬들이고 있다. 여기 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VK가 지난해 7월 은행 빚 6억 위안 등 10억 위안(약 1200억원)가량을 갚지 못하고 부도를 낸 뒤 나온 조치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 중소기업들 중 공장을 제3국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겪었던 가파른 인건비 상승과 노동력 부족 현상이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에 시달린다=둥관(東莞)의 삼화완구는 '춘절(春節.설) 연휴에 고향에 갔다 공장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70위안(약 8500원)을 주고, 고향 친구를 직원으로 데려오면 100위안(1만2000원)을 준다'는 조건을 걸고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다. 그러나 연휴가 끝난 뒤 돌아오지 않는 생산직 근로자가 많았다. 고향에서 "어디가 월급이 많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바로 그 회사로 옮기는 근로자가 늘고 있는 까닭이다.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중국에 공장을 세우면서 일자리가 넘치자 이런 현상이 생기고 있다. 춘절 연휴가 끝나면 생산직 사원이 20% 정도 줄어든다는 게 현지 한국 제조업체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인건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베이징의 근로자 임금 상승률은 거의 매년 15%를 넘었다. 무역협회가 지난해 말 중국에 진출한 180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2006년 2년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이 10%를 넘는 곳이 전체의 59%였다. 게다가 중국 근로자들에게는 임금뿐 아니라 양로보험.의료보험 등 급여의 60%에 이르는 각종 사회보장 비용을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 상하이 이마트 정민호 대표는 "고참 과장급 현지인 연봉이 5000만원 정도"라며 "상하이에서 전 세계 78개 유통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 이 정도를 주지 않으면 인재를 데려올 수 없다"고 말했다.

◆법과 세금으로 외국 기업 옥죄는 중국 정부=중국 정부는 3월 중 노동자의 합법적인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계약법'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는 한 기업과 노동자는 무기한 계약한 것으로 간주하고, 노동계약은 노동자 의견을 기준으로 한다고 규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인건비가 추가로 오르고 한국 투자기업의 경영여건이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중국은 증치세 환급 축소 등 세금정책을 통해 가공무역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급증하면서 미국.유럽연합(EU) 등과 통상마찰이 늘어나자 그 주범으로 가공무역을 지목하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기술이전 효과가 낮은 저부가가치 가공무역 수출을 줄이고, 기술이전 계획을 내놓을 것을 강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중앙일보=양선희(팀장).권혁주 기자(경제부문)
한국무역협회=송창의 중국팀장, 이승신 무역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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