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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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술을 라틴어의 「아쿠아 바이티」(aqua vitae),즉 「생명의 물」로 부르게된 연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한 연금술이 유럽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유럽인들이 호기심에서 이 기구에 발효된 술을 넣고 끓여 강렬한 액체를 얻게 되자 이것을 「불로불사의 물」이라 불렀다는 것.
다른 하나는 13세기 프랑스의 한 교수가 포도주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실험을 하다가 알콜을 재발견하고 이것을 만병통치의 「생명수」라 불렀다는 것.
술을 「아쿠아 바이티」라 부르게된 연유야 어디 있든지간에 서양의 의사들은 예부터 술을 「모든 의약의 여왕」이라 극찬하면서 환자들에게 권장해 왔다. 서양뿐만이 아니다. 동양 한방에서도 술은 「백약중의 으뜸」으로 꼽히면서 여러가지 질병의 치료로 쓰여왔다.
그러나 「술은 잘 먹으면 약이 되지만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술이 어떤 경우에나 「생명의 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를 보면 술이 약이 되는 예보다 오히려 독이 되어 각종 범죄의 원인을 제공하는 예가 훨씬 많다. 17일밤 대구 나이트클럽의 방화사건도 술이 시비의 발단이 되었다던가.
술을 많이 마시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는 지적도 있었다. 즐거워서,기분이 좋아서 마시는 경우보다 잊기 위해서,기분이 나빠서 마시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술마시는 풍조도 사회의 여러가지 상황이나 조건과 무관하지 않을성 싶다. 현진건의 단편 『술권하는 사회』나 60년대 어떤 시인의 시 『이 땅이 나를 술마시게 한다』같은 작품들은 술과 관련된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준다.
캐나다 양조협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주량의 기준이 되는 1인당 알콜 음용량에서 한국은 6.8ℓ로 세계 25위로 나타났다.
한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술많이 마시는 나라라는 발표도 있었으나 이것은 알콜농도의 판매량을 잘못 집계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사회의 여러가지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인지,유흥업소의 심야영업 규제와 음주운전 철저단속의 영향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술을 기분좋을 때만 마시고,술이 「생명의 물」로만 존재하는 시대는 과연 오려는지.<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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