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종군위안부를 부인한 아베 총리의 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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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그저께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정부.군대의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망언을 했다. 그가 10년 전 주도해 만든 자민당 내 우익 성향 의원 단체도 이날 같은 주장을 했다. 일본 정.관계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저께는 3.1절이었다. 이런 날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는커녕 소금을 뿌려대는 일본 지도층의 비도덕성에 절망을 느낀다. 이러고도 한.일 간 우정을 말할 수 있는가.

일본은 미국 하원이 일본 정부에 대해 종군위안부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아예 역사 왜곡으로 맞대응하려는 것 같다. 미 하원의 아태환경소위원회는 지난달 종군위안부였던 여성들을 불러 사상 처음 청문회를 열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미.일 관계가 나빠질 것이라고 '협박'까지 하는 등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채택될 경우 국제사회에서 큰 망신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종군위안부는 일본 정부도 인정한 사실이다. 1993년 당시 고노 관방장관이 일본군.관헌의 강제 동원 사실을 사과.반성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많은 일본 교과서도 종군위안부 내용을 싣고 있다. 아베 총리도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저께는 고노 담화를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피해자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증거를 없애고는 사실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

독일은 끊임없이 나치 역사를 반성한 결과 국제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임에도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역사 왜곡에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역사든 절대 숨길 수 없다. 창피하다고 왜곡할수록 더욱 부끄러운 국가가 된다. 역설적이지만 미 하원에서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하는 사람은 일본계 의원이다. 그는 아베 총리 발언 후 "일본의 명성을 더럽히지 말고 과거 잘못을 공식 사과해 일본의 입지를 높이라"고 충고했다. 아베 총리는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