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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시달리는 「서커스소녀」(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불쌍한 어린 것을 서커스단 원숭이처럼 가둬놓고 매질과 굶주림으로 다스리고 호의호식 할 수가 있습니까.』
4살 꼬마를 양녀로 입적시켜 7년간 학대하며 곡예사로 돈벌이를 시켜온 전뉴서울서커스단장 심동선씨(58) 부부의 반문명적 범죄사실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14일 관할 남대문경찰서에는 온종일 탄식과 분노의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김금동씨(57)는 14일 오후 남대문서 김경부 형사과장에게 「치떨리는」 심정을 전한뒤 자신의 양녀로 입양시키고 싶다고 울먹였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갈갈이 찢긴 주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치유하고 싶습니다.』
경남 고성읍 새양교회 전도사 임경이씨(43·여)는 당장이라도 서울로 달려와 주희양을 데려가겠다고 나섰다.
외판원생활을 하면서 야간 대학원에 다닌다는 한 청년은 두차례나 찾아와 『친구가 돼 주겠다』며 주희양의 손에 격려편지와 과자상자를 꼭 쥐어주기도 했다.
7년간의 동물 취급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주희양은 그러나 아직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시달리고 있었다.
담당수사관의 집에서 잠을 자다 새벽에 벌떡 일어나 『서커스는 이제 지긋지긋해요』라며 잠꼬대를 해 주위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침구조차 없는 1.5평 크기 옥상가건물의 감금생활.
하루 2시간의 수면,반찬이라고는 김치뿐인 두끼식사,온종일 계속되는 욕설과 매질,저녁 7시50분부터 자정까지 계속되는 9군데 야간업소 출연,힘든 집안일….
11살 나이에 키 1m20㎝,몸무게 20㎏으로 7살정도 어린이의 체격을 간신히 갖춘 주희양은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듯 사람만 보면 얼굴이 굳어졌다.
『이제 저도 공부를 해서 글자도 읽고 친구도 사귀고 싶어요.』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어린 소녀는 그러나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사람임을 알게되자 금방 긴장을 풀고 해맑은 표정으로 입을 열였다.
우리 사회에 따스한 온정과 사랑이 살아 있는한 가엾은 주희양도 훗날 옛얘기를 하며 즐겁게 웃고 지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져본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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