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색깔이 없다|출범 10년…소극적 플레이 관중들 식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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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프로야구의 색깔이 없다. 출범 10년째의 한국야구가 독자적인 야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미국야구도, 일본야구도 아닌 얼치기야구를 펼치고있다.
최근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대만이 미국·대만야구의 장점을 합쳐 독특한 대만형 프로야구를 정립시키고 있는 반면 10년 선배인 한국은 아직도 제 모습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만은 프로야구를 출범시키며 열악한 선수 층을 메우기 위해 남미선수를 도입, 다이내믹하고 파워 있는 야구를 선보여 관중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엷은 선수 층에도 불구, 안일한 자세로 현 상태를 답보 하는데 그치고 있어 대조적이다.
한국 야구의 특징이라면 지역연고제를 바탕으로 지역 팬들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했다는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전까지의 플레이를 보더라도 비틀거리는 한국야구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준 플레이오프(롯데-삼성)·플레이오프(삼성-빙그레) 8게임에서 18개의 번트가 쏟아져 게임당 2.25개의 번트를 시도하는 등 소극전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마저도 성공률이 60%정도에 그치고 있다.
포스트시즌에서 재일 동포 출신 김영덕(빙그레), 김성근 (삼성) 감독을 비롯, 강병철 롯데 감독은 주자만 나가면 번트를 지시, 일본식 야구에 길들여져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국내선수들은 기본 기가 부실, 공격의 기초인 번트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같은 현상은 페넌트 레이스에서도 이미 병폐로 드러나 일본 야구에 수준이 크게 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로출범 50년 역사의 일본야구가 탄탄한 기초 위에 성공률 90%이상인 정확한 번트공격을 가미, 아기자기한 맛을 내는 것을 동경(?)하고 있는 국내구단은 올 시즌(페넌트레이스) 5백4경기에서 무려 6백54개의 번트를 시도했다.
호쾌한 공격야구를 펼치는 미국야구가 3.75게임당 번트를 한번 시도할 정도로 타자의 기능에 승부를 거는데 비해 한국야구는 게임당 1.3개의 번트를 시도하는 등 아마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번트공격을 맹신하는 국내 감독들은 후속타자의 능력에도 아랑곳없이 선두타자가 진루할 경우 2루에 진출시키기 위해 거의 번트작전을 구사한다.
경기의 흐름은 번트실패로 인해 급전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국내 지도자들은 번트가 확실한 진루 방법의 공격임을 감안, 성공률 60%정도의 번트를 만능인 것처럼 고집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식 작전 형태는 좌투수에 좌타자가 약하다는 야구계의 통설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감독들은 좌투수로 교체되면 오른손 대타, 언더스로투수에는 왼손타자기용을 정례화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반쪽선수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연수 후 미국식야구를 표방, 자율야구를 펼치던 이광환 전OB감독이 중도 탈락한 것도 이같은 한국야구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관리야구로 대변되는 일본식야구의 맹점을 알고도 답습하고 있는 현 실정은 엷은 선수 층으로 인해 주전급 선수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불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현재 국내 구단 중 독특한 팀컬러를 갖추고 있는 팀은 미국식 야구를 표방한 신생 쌍방울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야구는 구단·감독·관중 할 것 없이 쩨쩨한(?)야구에 길들여져 있다.
포스트시즌 경기를 관전한 일본 주니치(중일)신문의 야구해설자 야마시타 지로(산하이랑)는『한국야구가 일본야구에 비해 힘은 있으나 고급기술을 습득할 기본 기를 갖추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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