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일군 인육으로 식사배급/도망치던 한인 60명 자폭·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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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인 생존자 증언 아사히신문서 보도
2차대전 말기에 태평양 섬으로 강제연행돼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던 한인 60여명이 일본군의 반란진압이란 구실하에 학살당하거나 자폭했다는 사실이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일 방위청의 『전사총서』에는 전혀 언급이 없는 이 사실에 대해 일 아사히(조일)신문은 3일 『사실을 사실대로 직시하는 용기와 진지함을 가져야 할 것』이란 군사평론가의 지적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생존자 박종원씨(68·서울)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당시인 45년 3월1일 미리환초(마셜군도)에서 40㎞ 떨어진 체르본섬에는 한인 1백명,일본군 20명이 배치돼 현지 주민 15명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둘레 3㎞ 정도의 이 섬에 대한 미군의 심한 폭격으로 보급이 끊기고 굶주림이 계속되자 45년 2월28일 일본군 중위가 「고래고기」라며 식사를 배급했다. 그런데 그 무렵 한인 2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한인들은 일본군이 소금을 만들던 옆섬에서 사람뼈를 발견했다. 한인들은 그대로 있다가는 자신들도 위험하다고 생각,일본군인을 처치하고 미 군함쪽으로 도망하기로 했다.
3월1일 새벽 잠에 빠진 일본병을 칼로 한명씩 한명씩 처치,7명을 죽였으나 여덟번째 일본 중위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의 권총발사로 탈출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일본군 진압대가 섬을 에워싸는 바람에 절망한 한인 상당수가 고기잡던 화약으로 자폭했으며 한인 20여명은 해안에서 사살됐다. 현지주민 15명도 총살당했다.
다른 섬으로 도망간 40여명은 미 군함쪽으로 탈출,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다른 생존자 정길채씨(66·전남)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다만 굶주린 한인이 야자열매를 따먹다 일본병의 심한 문책을 받고 사건이 빚어졌다는 사건발단만 다를 뿐 일본군 진압대의 무차별 학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편 당시 조사책임을 맡았던 전 일 해군대위는 들은적은 있지만 사건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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