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속의 김일성 중국방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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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몇년동안 김일성 북한주석의 중국방문이 연례행사처럼 되고 있다. 지난 2년간 연말께 잇따라 중국지도자들을 찾았던 김주석이 올해도 또 북경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형식적으로 보아 강택민 중국공산당총서기의 북한방문에 대한 답방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 김주석의 중국발길은 그 어느때 보다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두차례의 중국방문중 하나는 천안문사태이후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한소관계가 급진전되면서 중국지도자와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이 두가지 사태가 모두 위중한 것이었지만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체제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현재 북한이 받고 있는 중압감은 당시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지도자들이 만나 연대감을 표시하고 상호협조를 내외에 과시하는 것은 불가피한 정치적 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은 기회있을때마다 이러한 관계를 다짐하고 강화해 왔으므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은 그보다도 이번 김일성의 중국방문에서 논의될 내용들이 앞으로 한반도주변정세,남북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예상으로는 김일성 주석은 중국지도자들과 만나 북한의 어려운 경제를 풀수있는 중국의 협조,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개선 진행속도,북한의 대서방외교와 관련된 중국과의 협력문제 등이 중심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최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의혹과 관련해 중국과 어떤 논의를 할 것인지도 주목되는 문제다.
경제문제와 관련하여 중국도 북한과의 교역에서 내년부터 경화결제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김주석으로서는 이미 지난번 두차례의 중국방문때도 이에 관한 협조를 구했으나 워낙 중국의 형편이 어려워 별 효과가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대한관계개선 문제에서는 어느정도 의견의 접근이 이루어질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유일한 공산주의동맹국을 궁지에 빠지게 만드는 한국과의 접근을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김일성 주석은 이번 방문을 통해 그동안 북한이 집요하게 추구해온 미국과의 직접 접촉을 위한 노력에 중국의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중국의 순탄하지 못한 관계,또 미국의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원칙고수의 입장으로 미루어 이 또한 별 뾰족한 수를 찾아 내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종래 자주 논의되어온 문제들보다 우리는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자세에 중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을 더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중국스스로 핵확산 금지조약 가입의사를 밝히고 있으므로 그러한 원칙에서 북한의 핵문제에 대응해 주기를 우리로서는 기대하고자 한다.
이번 방문이 교조적인 공산주의체제 고뿐아니라 변화하는 정세에 현실적으로 대응하여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적 대화도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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