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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찰 총수' 권오승 정권말기 군기 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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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스분석 연초부터 권오승(사진)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바람'이 매섭다.

9개 석유화학사와 4개 정유사가 하루 간격으로 수백억원씩의 과징금을 맞았다. 일부는 검찰 고발까지 당했다. 유화업계 담합은 11년 묵은 관행이다. 정유사의 기름값 담합도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찾기 어려운 대표적 사안이다. 이 때문에 두 건 모두 강철규 전 위원장이 2004년 조사를 시작하고도 매듭을 짓지 못했다. 3년을 끌어온 '앓던 이'를 단번에 뽑은 건 임기 2년차를 맞은 권 위원장이다.공정위의 최근 행보는 지난해 재벌정책에 '올인(다걸기)'하다시피 했던 것과 사뭇 다르다. 올 들어 표적은 민생 관련 불공정거래 행위로 옮아갔다. 이는 권 위원장의 뜻이라는 게 공정위 핵심 간부들의 전언이다.

권 위원장은 재벌 독과점 규제를 전공한 교수 출신이다. 지난해 3월 공정거래위원장이 되자 권 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제보다 더 강력한 순환형 출자 금지 방안을 직접 들고 나왔다. 그러나 순환형 출자 금지는 불발에 그쳤고, 그나마 출총제 개편안조차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권 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소비자 복지 증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정위의 올해 업무계획에도 권 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첫 줄에 국민생활과 밀접한 소비재 분야, 기업경쟁력과 직결되는 원자재 분야, 정부 조달 분야를 집중 감시하겠다고 못 박고 있다.

공정위가 재벌 때리기에서 본연의 업무인 소비자 보호와 카르텔 깨기로 돌아선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동안 심증만 있던 기름값 담합을 처음 적발해낸 건 소비자 이익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공정위의 진정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연초 "기업의 불법행위는 엄격하게 제재하되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해 과징금 부담은 줄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약속은 벌써 공수표가 됐다.

기업들은 공정위의 칼날에 한껏 움츠러드는 분위기다. 모 그룹은 세 차례의 과징금이 1000억원을 넘어설 정도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다른 경제 부처가 그동안 벌인 각종 정책의 입법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하자 경제 경찰인 공정위가 나서서 기업의 군기를 잡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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