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제한법 9년 만에 부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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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자제한법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법은 연 40% 정도의 이자상한선을 정해 놓고 이를 넘는 이자를 받는 개인 간 거래나 미등록 대부업체 영업을 무효로 하는 내용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폐지됐던 옛 이자제한법과 큰 틀은 같다. 명분은 고금리로 고통받는 서민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서민 금융 제도의 개선 없이 무작정 이자를 강제로 낮출 경우 서민들은 돈을 빌리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자제한법 9년 만에 부활하나=지난해부터 논의되던 이자제한법의 부활 가능성이 커진 것은 정치권과 법무부의 개정 추진에 반대했던 재정경제부가 최근 찬성 쪽으로 급선회하면서부터다. 익명을 요구한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서민들이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지는 등의 부작용을 생각해 그동안은 소극적이었지만 국회에서 의원입법을 내놓고 논의하는 마당에 더 이상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고금리 해소'라는 명분을 들고 나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요구를 행정 부처가 계속 반대하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정치권도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물론 열린우리당도 이자제한법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정했고 한나라당과 여당 집단탈당파가 구성한 교섭단체인 '통합신당모임'도 법안 처리에 긍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자제한의 법적 필요성을 지적한 것도 법안 통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떤 내용 담기나=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안은 이종걸 의원 등이 제출한 안과 심상정 의원 등이 제출한 두 가지. '심상정 안'은 전 금융회사 대출 및 개인 간 거래에 연 25%의 이자상한선을 두자는 것이고, '이종걸 안'은 연 40%의 이자상한선을 두지만 금융회사와 등록 대부업체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다. 이 중 '이종걸 안'이 지난해 법무부가 마련한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이어서 채택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걸 안'의 핵심은 기존 대부업체는 현행 대부업상 이자상한선(연 66%)을 그대로 인정해 주되 개인 간 거래나 미등록 대부업체에 대해서는 연 40% 이하의 이자를 강제하는 것. 아울러 상한선을 넘는 이자 부분은 무효로 하고, 반환청구도 가능하게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높게는 수백%의 살인적인 고금리에 시달렸던 저신용층과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들이 큰 혜택을 볼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한 금융채무불이행자는 8만5000명에 달한다.

◆"서민 대출 길만 막는다" 비판도=전문가들은 이자제한법이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현재 66%로 상한선을 정해 놓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하는 대부업법도 일부 대형업체만 지키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처벌 규정도 없는 이자제한법을 만들어 놓는다고 달라질 게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다 현행 대부업상 이자율상한선(66%)은 그대로 두고 이자제한법만 만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존 업체는 고금리의 혜택을 그대로 누리게 하면서 업체보다는 이자가 더 높게 마련인 개인 간 채권.채무 관계만 규제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융연구원 정찬우 연구원은 "대부업 이자율(66%)을 손댄다면 저 신용층에 대한 대출이 급감할 것"이라며 "되레 서민들의 대출 길만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업계에서는 서민들에 대한 대출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이자제한법의 도입에 앞서 소외계층을 배려한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등의 활성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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