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라!논술테마] 영역별로 짚어 보는 표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3면

좀 더 안전한 결과 얻으려는 본능 … 심리

완벽하게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는 매우 어렵다. 인간의 창작물이 누적돼 있고 타인과 영향을 빈번하게 주고받는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표절이 잦은 이유는 완벽한 창작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표절의 심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의식하지 못한 표절과 의도한 표절이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유명한 심리학자 스키너(1904~90)는 어느 날 독특하고 참신한 표현을 생각해 내고 스스로 감탄했다. 알고 보니 오래전 자신이 이미 쓴 글이었다. 이처럼 의식하지 못한 표절은 언젠가 경험한 누군가의 작업이 기억 속에 남고 이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결과물로 내놓는 기억 왜곡에 의한 표절이다. 반면 의도적 표절은 남의 창작물을 자기 것인 양 가장하는 표절이다.

표절은 남을 따라 하려는 모방처럼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잘 따라 한다. 태어난 지 사흘된 아기도 그 앞에서 혀를 내밀거나 입을 벌리면 흉내를 낸다. 이렇게 타인을 모방하는 이유는 생존하는 데 더 유리한 결과를 가져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좀 더 안전한 결과를 얻으려는 본능이 작용해 표절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표절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빨리 결실을 얻으려는 욕구 때문에 일어나기도 한다. 성공 욕구가 강한 사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성공하려는 사람, 어떤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의도적인 표절을 하기 쉽다. 특히 표절은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주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눈에 보이는 분명한 결과를 중시하고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하는 사회에서 표절은 자주 일어나게 마련이다.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찾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했을 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자기 능력에 비해 좀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할 때도 표절은 쉽게 일어날 수 있다.

표절은 범죄다. 따라서 표절을 막으려면 결과만 중시하는 분위기를 지양해야 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것보다는 나 자신의 생각과 작업에 더 가치를 둘 때 표절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곽금주 교수(서울대.심리학)

☞생각 플러스:눈에 보이는 결과만 중시하고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하는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세 가지를 들어라.



출처 명시만 잘 해도 문제 확 줄어 … 법률

표절 문제로 지식인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표절의 심각성은 어문 분야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나아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발생한다는 데 있다. 각 분야에서 빈발하는 표절을 방지하려면 현실적으로 저작권법의 규정부터 바꿔야 한다.

저작물을 권리 대상으로 하는 저작권법은 두 가지를 목표로 삼는다. 저작자의 권리 보호와 저작물의 이용 촉진이다. 저작물의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도 한다. 따라서 저작권법에서 허용하는 제한 사유를 합리적으로 따지면 표절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문제는 표절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규정이 현행 저작권법에 있음에도 법 적용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이 제한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이용된 저작물의 출처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이를 강제하기 위해 '출처 명시 위반죄'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죄로 처벌된 예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사실 출처 명시만 제대로 이뤄져도 표절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그럼에도 출처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는 것은 이 죄가 친고죄 형태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친고죄 또는 반의사불벌죄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친고죄로 돼 있던 것을 신저작권법에서 비친고죄로 개정했다.

또 다른 문제는 출처 명시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이에 대해 "저작물의 이용 상황에 따라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방법"이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간단해서 그런지 이 방법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다. 그러므로 법에 출처 명시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도록 개정하는 것도 좋겠다. 이 분야에서 앞서 가는 독일 저작권법이나 일본 저작권법을 참고할 만하다.

법 개정이 이뤄졌다 해도 법의 기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작권에 관한 일반의 인식이 낮은 상태에서는 저작권법도 제구실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저작권과 표절에 관한 문제 의식을 일반인에게 지속적으로 알려 나가야 표절의 악순환이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저작물을 생산하는 당사자의 학자적 양심과 직업윤리 의식이 사회 밑바닥에 형성돼야 한다.

박영길(한국저작권법학회 회장)

☞생각 플러스:표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효성이 높은 법적 조치를 근거와 함께 제시하라.



한입 정보 … 학생들 짜깁기 리포트 표절 하버드대선 '적발 프로그램'

미국 사회는 표절을 지적 도둑질로 간주해 엄격하게 규제한다. 그럼에도 대학 사회에서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자료를 짜깁기해 리포트를 제출하는 대학생이 1999학년도엔 10%였지만 2001학년도엔 41%로 늘었다고 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대학생들의 표절을 방지하기 위해 하버드대가 팰라디엄 프로젝트(표절 적발 프로그램)를 도입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인텔 등이 주도해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콘텐트 불법 사용을 막는 하드웨어다. 학생들이 파일 형태로 제출한 과제물을 인터넷 웹페이지 6000만 개, 데이터베이스에 내장된 기존 과제물 2200만 건, 정기간행물 1만여 권과 비교해 표절 여부를 가려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