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푸틴' 양자 대결 가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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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후계구도가 양자대결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내년 3월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푸틴 대통령은 15일 세르게이 이바노프(54) 부총리 겸 국방장관을 제1부총리로 승격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바노프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2) 기존 제1부총리와 함께 푸틴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점쳐지는 인물이다.

이와 관련, 이바노프를 부총리보다 서열상 한 단계 위인 제1부총리로 승격시켜 메드베데프와 나란히 세움으로써 양자 후계구도를 확실히 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시에 국방 책임자의 지위를 높임으로써 군사력 강화에 한층 역점을 두겠다는 푸틴의 정책의지도 드러났다. 하지만 일부에선 푸틴이 3선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할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푸틴식 전격 인사=이번 인사는 말 그대로 전격적이었다. 푸틴은 정기 각료회의에서 인사내용을 발표했다. 이바노프를 제1부총리로 승격시킴과 동시에 국방장관직에서 면하고, 새 국방장관에 국세청장을 맡고 있던 아나톨리 세르듀코프(45)를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각사무처장을 맡고 있던 세르게이 나리슈킨(53)을 대외경제관계를 책임지는 새 부총리에 기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로써 총리 밑에 한 명의 제1부총리와 두 명의 부총리가 있던 내각 지도부는 두 명의 제1부총리와 두 명의 부총리 체제로 바뀌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바노프의 승격과 관련, "그의 책임 분야를 넓혀 군산복합체뿐 아니라 민간경제분야까지 관리토록 하려는 것"이라며 "군산복합체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긍정적 변화들이 민간분야로까지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바노프는 민간경제분야 중 과학기술 부문을 책임지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은 특히 "지난해 러시아의 무기 수출이 60억 달러를 넘어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며 "이바노프가 국방부에 맡겨진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칭찬했다. 푸틴은 이어 "2015년까지의 국방개혁을 계속 추진하는 데에는 막대한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며 "이런 맥락에서 최근 3년 동안 재무부 산하 국세청에서 일해온 세르듀코프를 국방장관으로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양자 후계구도 가시화=푸틴 대통령은 이달 초 기자들에게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12월까지는 대선후보에 관해 공식적인 논평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바노프를 제1부총리로 승진시킴으로써 그가 유력 대선후보인 메드베데프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모스크바 정치연구소 세르게이 마르코프 소장은 "이바노프의 승진은 두 명의 후계자, 두 명의 대선후보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바노프는 푸틴 대통령이 "손발처럼 가까이 의지하는 측근"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푸틴과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옛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그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에서 그와 함께 일했다. 2001년부터 국방장관을 맡아 군 개혁을 주도해 왔으며 2005년 부총리에 임명됐다. 전문가들은 제1부총리 승진으로 이바노프의 대권 야심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메드베데프 또한 만만찮은 상대다. 역시 푸틴과 동향인데다 1990년대 초반 상트페테르부르크시에서 그와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았고, 2000년 대선에서는 푸틴의 선거 캠프를 지휘하기도 했다. 대통령 행정실장을 거쳐 2005년 말부터 민생 분야 제1부총리를 맡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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