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고리대금 돌려받을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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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심모(66)씨는 2000년 대부업체 이사 오모(45)씨에게서 개인적으로 급전을 빌렸다. 수차례에 걸쳐 모두 4500만원을 빌렸는데 이자가 월 40%(연 480%)의 고리(高利)였다. 심씨는 원금에 이자를 합쳐 1억1000만원을 갚았다. 심씨는 2001년 오씨에게 또 급전 1575만원을 빌렸다. 선이자와 수수료를 떼고 실제로는 1300만원을 받았다. 이자는 보름에 15%, 연 이자율로 따지면 243%나 됐다. 이자가 무서운 줄 알았지만 돈이 급했다. 결국 심씨는 이 돈을 갚지 못해 오씨에게서 대여금 반환청구 소송을 당했다. 오씨는 "심씨가 약정한 이자율대로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심씨는 "과도한 이자는 갚지 않아도 되며 그전에 갚은 돈(1억1000만원) 중에서도 통상 한도를 넘는 고율이자 부분은 돌려 달라"고 맞섰다.

◆1998년 이후의 경우에만 해당=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 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15일 오씨가 심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반환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돈을 빌린 심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양쪽 당사자가 이자율 등을 약정했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뛰어넘는 고리는 무효"라고 밝혔다. 특히 "돈을 빌린 사람이 빌려준 사람에게 이미 원리금을 갚았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을 넘는 고율 이자 부분은 부당이득이므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며 원심을 깼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민사부에서 다시 재판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고율의 이자로 돈을 빌렸더라도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 등을 통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이자를 초과하는 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단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98년 이후 돈을 빌렸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이자율 한도에 대해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며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경제적 여건 ▶금융기관의 대출이율 ▶돈을 빌린 사람의 원금 상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1, 2심 재판부는 "부당한 고율 이자라 하더라도 이미 갚은 돈은 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었다.

◆부당한 고리의 기준은=현재 개인적인 금전거래에 대해 이자를 제한하는 법은 없다. 62년 제정된 이자제한법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폐지됐다. 예전 이자제한법은 5000만원 이상의 금전 대차거래에서 이자율이 연 4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었다.

이자제한법이 없어지자 이자율이 연 수백%를 넘는 고리대금의 폐해가 극심해졌다. 그러자 정부는 2002년 대부업법을 만들어 이자율을 연 70%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는 금융 당국에 정식 등록된 대부업체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었다. 심씨처럼 개인적으로 돈을 빌릴 경우 아무리 높은 이자율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개인 간의 대차거래에서도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적용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는 대부업법 규정(연 70%), 2심 재판부는 대부업법 시행령(연 66%)의 기준을 넘으면 부당한 고리라고 판단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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