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우리설날은집에서놀기] 만화가 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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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만화 보기'를 제안한다. 피로해소제가 따로 필요 없다. 첫째 테마는 가족.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폭넓게 사랑을 받아 온 장르다. 우선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리얼'(대원씨아이)을 추천한다. '슬램덩크'의 작가인 그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소재로 한 '배가본드'를 연재하는 와중에 짬을 내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장애인 휠체어 농구단이 소재다. 고교 농구팀 에이스에서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된 다카하시. 그런 그에게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8년 만에 돌아온다. 아버지와 함께 농구를 시작했고 그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했던 그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처 때문에 다시 돌아온 아버지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화조차 힘겨울 정도다. 최근작 6권에선 이런 아들과 아버지의 갈등.화해를 중심에 놓았다.

둘째 테마는 인생. 명절이면 으레 한두 시간씩 고스톱판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도박판만큼 삶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테마도 없을 터. 지난 추석 영화로도 흥행한 허영만의 '타짜'(랜덤하우스). 어느 나라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도박만화의 지존이다. 총 4부 중 현재 3부까지 나와 있다. 1부는 '지리산 작두'로 불린 타짜(도박 고수) '고니'의 이야기다. 2부는 고니의 조카인 '대길'의 이야기, 그리고 3부는 전설의 타짜 짝귀의 아들 '일출'의 얘기다. 주인공들은 속고 속이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고우영의 '오백년'(애니북스)도 인생의 부침을 담았다. 조선왕조 500년의 가려진 이야기와 그 속의 인간 군상(群像)을 드러낸다. 1970~80년대 발표한 다른 작품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작가의 필력과 해학은 그대로다.

세 번째 테마는 SF(공상과학). 사이보그, 거대 로봇, 우주인의 침략, 타임머신, 우주여행, 생체 이식, 피라미드의 신비 등 70년대 소년이라면 누구나 열광했던 소재다. 요코야마 미쓰데루의 '바벨2세'(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는 이런 흥미진진한 소재를 모두 담았다. 과거 만화 출판사의 대명사 클로버문고에서 복사판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를 기억한다면 37년 만에 정식 발매된 이 만화가 이번 명절 가장 짜릿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키무라 마코토의 '프라네테스'(프라네테스)는 SF의 모범작. SF라는 장르가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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