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민주화 2년…6개국 현장에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지난 45년간 동유럽은 사회주의적 평등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개인의 영리를 위한 기업활동은 반사회적 범죄행위로 취급됐다.
그러나 이제 사회주의적 중앙통제경제에서 벗어나 서구식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기업가는 새로운 영웅이 됐으며,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황금만능사회로 변하고 있다.
지금 동유럽 전체엔 돈벌이 열풍이 뜨겁게 몰아닥치고 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고나와 흥정을 붙이고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무슨일이든 서슴지 않는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는 요즘 도시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존시장은 물론 거리 어디에서나 「팔고 사는」행위가 이뤄진다.
이를 놓고 한쪽에선 기업가정신의 부활이라고 찬양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자본주의의 사악함이 폴란드인의 심성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함께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빈부격차가 지금까지 사회주의적 평등주의에 안주해온 동유럽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문화궁전에 카지노>
한편에서 벼락부자가 출현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구걸로 생계릍 유지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르샤바 시내 중심 마르샤고프스카대로와 예로졸림스키예대로가 교차하는 데필라트광장에 위치한 거대한 문화과학궁전 높이 2백34m, 37층이 건물은 바르샤바의 상징이다.
문화과학궁전은 소련독재자 요시프 스탈린이 폴란드 국민에 보낸 「선물」로 지난 56년4년간에 걸친 공사끝에 완공했다. 이 건물은 바르샤바시내 어디서도 눈에 띄기 때문에 지리적 기준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바르샤바시민들은 이 건물을 혐오한다. 스탈린주의 소련권위주의를 상징하는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란드인들은 이 건물을 「소련이 만든 바르샤바의 무덤」이라고 혹평한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문화과학궁전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과거 억압의 상징이었던 건물이 이제 막 태어나기 시작한 폴란드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문화과학궁전 꼭대기 전망대 외벽엔 각종 상업간판이 나불기 시작, 건물 자체가 거대한 광고탑으로 변했다.
뿐만아니라 건물내부에 각종 오피스·쇼핑센터 등이 들어서고 있으며 심지어 카지노까지 문을 일었다.
최근 한 폴란드계 미국인은 문화과학궁전 전체를 미화 3억달러에 구입하겠다고 폴란드정부에 제의, 화제를 뿌렸다.
문화과학궁전내에 자리잡은 백화점 BAS. 지난해 l2월 개장한 이곳은 폴란드 자본주의 성공사례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30대후반의 세 젊은이 야체크 오를로프스키·안제이 시에라비예츠키·즈비그네프 보그스키는 거금인 미화 3백만달러를 공동출자, 폴란드 정부로부터 문화과학궁전내 극장을 25년간 임대, 백화점으로 개조해 문을 열었다.
BAS는 판매직원 1백20명을 고용, 이들에게 폴란드평균월급의 2배 가까운 2백50만즐로티(미화 2백50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취급품목은 가전제품·의류·구두·피혁제품·자동차부품·화장품·액세서리·보석류 등 특히 가전제품은 보쉬·파이어니어·브라운등 서방제 고가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오릍로프스키사장이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은 지난 70년대초.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그는 타고난 「반체제기질」에 따라 취직을 포기하고 개인사업을 시작, 플래스틱 액세서리를 팔아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당국의 단속대상이 돼 그동안 여섯 번이나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전면적인 시장경제개혁이 실시됨에 따라 개인사업이 전면 허용, 고기가 물을 만났다.

<이태원까지 원정>
BAS는 현재 문화과학궁전 1층 일부만을 사용하고있으나 머지않아 2,3층까지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전자·화학·섬유 등 자체공장까지 소유하려는 야심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폴란드인들은 예부터 상재가 뛰어난 민족이다. 공산체제가 유지돼온 지난 반세기동안에도 폴란드인들은 그들의 장사꾼 기질을 잃지 않았다.
폴란드 소유권이전성 야체크 부코프스키 중소기업국장은 과거 공산치하에서도 3천8백만인구중 l백만명이 개인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고 지적, 폴란드 장사꾼둘의 끈질긴 전통을 찬양한다.
부코프스키국장은 시장경제개혁도입 1년만인 지난해말 현재 폴란드 전체기업숫자의 40%인 약 95만개기업이 민간소유라고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1인기업」, 다시말해 보따리장수들은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
폴란드 보따리장수들은 지금 세계를 누비고 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등 인접유럽공동체(EC)국가들은 물론, 동남아시아 태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 심지어 한국까지 진출하고 있다.
지난봄 폴란드 보따리장수들은 전세기편으로 서울로 원정, 이태원·평화시장 등을 누벼 엄청난 양의 섬유제품을 쇼핑함으로써 화제가 됐다.
이들은 폴란드 국내엔 물론, 소련·동유럽시장에 풀어 한번 원정에 투자액의 2∼3배 수입을 가볍게 올린다.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앞 데필라트광장은 보따리장수들의 천국. 이곳엔 부스형 판매점 4백여개, 좌판 6백여개등 1천여개 「상점」이 성업중이다.
이들의 국적도 비단 폴란드인 뿐 아니라 소련·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중앙아시아·베트남·몽골까지 극히 다양한민족들이 인종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데필라트광장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은 바르샤바 시당국에 평방m당 하루 5천즐로티(미화 약50센트)를 사용료로 지불한다.
이곳엔 별의별 물건이 다있다. 여자속옷에서부터 청바지·운동화·구두·가전제품·청량음료· 초컬릿·바나나·자동차부품·기계공구등 없는것이 없다. 소련인들은 캐비어(철갑상어알젓)·보트카·아르메니아산 코냑 등을 들고나오며, 몽골인들은 가죽핸드백·모피·카핏등을 판다.

<소련인유입 골치>
폴란드 경제개혁의 주역인 레체크 발체로비치재무장관은 데필라트광장이 『폴란드 시장경제의 상징이며, 폴란드인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가 되살아나고 있는 증거』라고 격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비판의견도 없지 않다. 데필라트광장시장에 나온 물건의 대부분이 밀수에 의한 「부정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또 돈을 벌겠다는 열기 또한 정상이 아니다. 한 폴란드인 대학교수는 『광장에 가면 모두가 돈에 미친 것 같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불결한 주위환경도 큰 문제다. 전기·상수도·하수도등 기본시설이 안된 상태에서 상인·고객들이 내버리는 각종오물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쓰레기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등 위생면에서 큰 골칫거리다.
이와함께 폴란드보다 경제사정이 나쁜 소련·불가리아·루마니아등에서 몰려오는 보따리장수· 불법취업자 문제도 심각하다.
이중 소련인은 지난해 약4백20만명이 폴란드를 방문했으며, 금년 상반기에만 이미 6백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폴란드정부는 집계하고 있다.
최근 소련-폴란드 국경엔 폴란드에 입국하려는 소련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바르샤바에서 만난 한 소련여인은 국경통과에 3일이 걸렸다면서, 소련에서 가지고온 보트카·캐비어·모피등을 팔아 3백달러를 벌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이돈으로 청바지를 구입, 소련에 돌아가 팔 생각이다.
소련인문제보다 심각한 것이 루마니아인 문제다. 요즘 동유럽 국경 어디서나 루마니아인 여행자들은 철저한 세관검색을 받는다.
현재 폴란드엔 모두 6만명의 루마니아인이 체류하고 있으며 또 그중 상당수는 집시다. 이들은 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으며 특히 집시는 구걸·절도·매춘등을 일삼아 큰 골칫거리다. 현재 폴란드정부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 추방조치를 고려중이다.
한편 너나할 것 없이 달려드는 돈벌이 열풍속에서 가진자와 못가진 자간 빈부격차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바르샤바에선 소위「백만장자클럽」이 탄생했다. 클럽 회원이 되려면 연l백만달러의 사업실적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백만장자 클럽도>
5천달러로 돼있는 가입비는 조만간 l만달러로 인상할 예정이며, 월회비로 3백달러를 낸다. 현재 회원수 30명이며, 50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
신흥부자들의 고급취미도 대단하다. 지난 5월 바르샤바시내 크라코프스키가 옛 군복판매장 자리에 독일제 메르세데스 벤츠 쇼룸을 연지 며칠만에 벤츠승용차 50대가 팔려 폴란드 부자들의 실력을 과시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일반 폴란드인들의 눈길은 결코 우호적인 것이 아니다. 그동안 사회주의적 평등주의에 익숙해온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그들의 축재방법이 대부분 불법·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신훙부자들은 대부분 과거공산치하에서 지하경제, 즉밀수·불법거래·탈세등 불법을 통해 치부했으며, 지금도 탈세등 불법을 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더욱이 이들중엔 과거 공산체제에서 공산당·정부의 고위직을 맡으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 새 세상에서 자본가로 헹세하는 사례도 있어 일반인들을 분노케 한다.
한 폴란드 기업인은 언젠가 자신이 벤츠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던중 교통신호에 걸렸을때 한 여인이 다가와 욕설과 함께 자동차 앞유리에 침을 뱉고가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가진자에 대한 질시」가 폴란드 시장경제 이행에 가로놓인 큰 장애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다.
글 정자양특파원
사진 신동연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