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의료 관광객' 모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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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몽골인 돌고(44.의사) 부부는 지난해 2월 이후 올 초까지 서울에 세 번 왔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부부는 서울대병원 외국인 진료소에서 초음파.MRI.CT 검사, 혈액.소변 검사 등을 받았다. 검사 후에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3~4일 정도 관광을 했다. 이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몽골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부부는 세 차례 검진비로 660만원을 썼다. 이들은 "660만원이면 몽골에선 큰돈이지만 실력 있는 한국 의료진으로부터 검진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고 말했다.

임정기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한국의 의료진 수준이 높은 데다 검진 비용도 싼 편이라 외국인들이 의료관광 형태로 병원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국내 병원을 찾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이에 발 맞춰 정부와 관광공사, 민간 의료기관, 지방자치단체가 본격적으로 의료와 관광을 결합한 '의료 관광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늘어나는 외국인 환자=서울대 외국인 진료소를 찾는 환자 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02년 3497명에서 지난해에는 7636명을 기록했다. 매일 30~40명의 외국인 환자가 서울대 병원을 찾는 셈이다. 이 중 5~6명이 검진과 관광을 겸해 한국을 찾고 있다.

외국인 손님은 주로 중국.몽골.일본.미국인이다. 이들은 건강검진을 받거나 본국보다 싼 약품을 처방받기 위해 한국 병원을 찾는다. 본국에 없는 약을 구입하기 위해 한국에 오기도 한다.

일본인 이케다 나오(20)는 일본에서는 수입되지 않는 항우울증 약을 구입하기 위해 한국 병원에 온다. 외국인들은 의료보험 대상이 아니라 몇 명이 한국을 찾는지, 얼마의 의료비를 쓰는지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연간 1만 명 정도 한국을 찾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외국인 진료소 김경희 책임간호사는 "지난해 말 뇌수술을 받은 한 미국인 환자는 모두 4000만원을 썼지만 싸고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에 만족해 했다"고 말했다.

◆의료 관광 세일즈 나섰다=외국인 환자들은 병원의 큰 수입원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 병원 등이 공동으로 외국인이 한국에서 관광도 즐기고 치료도 받을 수 있도록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관광공사는 지난해 말부터 영어.일어.중국어 등 5개 언어로 만든 의료 관광 홍보 팸플릿을 외국에 배포하고 있다. 또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300여 명의 전문인력을 올해 양성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30여 병원과 함께 23일 ' 해외 환자 유치 민관 협의체'를 발족해 해외 환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서울시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와 14일 '건강검진 패키지'를 만들어 마케팅 활동을 하기로 합의했다. 서울시는 올해 2500명, 내년에 1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풀어야 할 과제=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국내 여행업체가 병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모집할 수 없다. 의료 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개인적으로 오는 것이다. 여행업체가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면 의료 관광 시장은 더 커질 수 있지만 현행 법률로는 안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외국인에게 한국 병원을 홍보.마케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의료관광상품을 파는 것은 안 된다"며 "앞으로 의료법을 개정, 여행업체 등이 외국인에게 한국 의료 관광을 알선하는 것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엔씨 여행사 김용진 사장은 "의료 관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의료법이 고쳐지지 않아 싱가포르.태국 등에 고객을 뺏기고 있다"고 말했다.

글=성시윤·이수기 기자<copipi@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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